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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왕의 왕 예수님 (누가복음 19:28-40/2023.4.2)

작성자

유은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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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왕의 왕 예수님
2023.4.2.
주일오전

누가복음 19:28-40

로마 제국의 기초를 쌓은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기원전 100-44)는 기원전 58년부터 8년간 갈리아 지역, 지금의 주로 프랑스 전역을 정복하고 정치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갈리아 원정기』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갈리아 지역을 정복함으로 로마 시민들에게 정치적인 인기를 얻고 로마 황제가 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을 마치고 개선을 할 때 그는 흰 말을 타고, 펄럭이는 진홍색 외투를 입고 로마로 개선했습니다. 『갈리아 원정기』에는 그 때 시민들이 그를 환영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카이사르가 도착하자 모든 자치시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경의와 호의로 맞았다. (...) 카이사르가 지나가게 되어 있는 문과 길과 장소들을 장식하는 데서 한치의 소홀함도 없었다. 모든 주민들이 그를 보러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으며, 곳곳에서 재물이 바쳐졌다. 장터와 신전들에는 연회용 긴 의자가 가득 들어찼는데, 그토록 고대하던 승전의 기쁨을 미리 맛보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부자들은 선심을 썼고, 가난한 사람들은 열의를 보였다.”(카이사르/ 천병희 옮김, 『갈리아 원정기』 (파주: 숲출판사, 2012), 312.). 

당시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제물 삼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고 마침내는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지만 그후 자신을 종신독재관으로 선언하고 독재를 하자 이에 반대한 부하 브루투스에 의해 암살당합니다. 카이사르같은 독재자 왕의 모델은 좋지 ㅇ낳은 모델입니다. 성경은 좋은 왕의 모델로 예수님을 만왕의 왕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어린 양 [예수님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왕들 중에 그 중에서도 최고의 왕이신 예수님은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지만 자기 권력을 가지고 자기를 위해 독재하며 통치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인류를 위해 자기를 낮추시고 섬기며, 심지어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는 좋은 왕이십니다. 좋은 왕의 모델이 있을 때 나쁜 왕이 비교되고 드러납니다. 우리는 좋은 왕이 있을 때 그 왕을 좋아하고 따라하게 됩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좋은 왕이신 예수님을 여러분의 인생의 왕으로 고백하시고 예수님을 따라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30절을 읽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3년간의 공생애를 다 마치시고 이제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 놓으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를 지실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근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셨을 때 제자 중 둘을 맞은편 마을로 보내시며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면 풀어 끌고 오라고 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면 주가 쓰시겠다고 하고 풀어 오라고 했습니다.     

제가 대치동교회 부목사때의 일입니다. 어느날 주차장에 보니까 근사한 검은색 새 중형차 한 대가 서 있었습니다. 알고보니까 교인중에 어느 분이 담임 목사님께 선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후에 보니까 그 중형차는 없어지고 다시 새 차가 하나 있는데 제 기억이 맞다면, 마티즈라는 소형차가 서 있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했더니 목사님이 선물한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중형차를 작은 소형차로 바꿔 오신 것입니다. 저는 그 상황을 보면서 담임 목사님의 겸손함이 느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카이사르같이 흰색의 좋은 말에 진홍색 망토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보통 말이라도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모양이 났을 텐데 보통의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미 나귀도 아니고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아마도 나귀 새끼는 키가 작아서 예수님이 탈때도 엉거주춤 타면서 다리를 땅에 끌면서 타는둥 마는둥 반은 다리로 걸어서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예루살렘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하면서 웃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모가 많으셔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시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우스운 행동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행동하신 것은 예수님이 겸손한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스가랴 9장 9절에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겸손한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8절을 읽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시자 제자의 온 무리가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입니다하며 예수님을 찬양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유대인의 왕을 넘어서고, 온 세상의 왕도 넘어서며,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종교개혁자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은 그가 쓴 『기독교강요』에서 예수님이 왕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왕 [예수님]은 우리가 전쟁을 다 마치고 승리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결단코 우리를 버려두지 않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도우신다. (...)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통치 법칙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받은 것을 우리와 함께 나누시는 데 있기 때문이다.”(존 칼빈/ 문병호 옮김, 『기독교 강요 2』 (서울: 생명의말씀사, 2020(초판), 448.).  

칼뱅은 예수님은 우리 왕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승리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두 명의 왕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 나라의 왕입니다. 둘째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 예수님입니다. 세상 나라의 왕은 영원하지 않고 자꾸 바뀝니다. 일시적으로 도울 수 있지만 영원히 도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 육체를 잠깐 지켜줄 수는 있어도 우리 영혼까지 영원히 지켜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도 도와주시고, 지켜 주실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 주시고 영원토록 왕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왕입니다. 여러분 모두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시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39-40절을 읽겠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제자들을 책망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제자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아직 예수님이 누구신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11절에 “예수께서 [빌라도]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대답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왕이며, 온 우주와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우리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를 받을 때 가장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살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4세기 라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는 그가 쓴 『고백록』에서 그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제 안에 무슨 공간이 있어 하나님께서 제 안으로 오신다는 것입니까?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제 안의 어디로 오신다는 것입니까? (...) 하나님, 당신께서 제 안에 계시지 않으면 저는 있지도 않습니다.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 당신께로부터 모든 것이, 당신을 통해서 모든 것이,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이 존재하는 까닭입니다.”(아우구스티누스/ 성염 역주, 『고백록』 (파주: 경세원, 2016(초판), 56.). 

아우구스티누스가 제 안에 무슨 공간이 있기에 하나님이 제 안에 오신다는 것입니까?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정말 내 안에 공간적으로 오신다는 뜻이 아니라 수사적인 표현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지금까지 내가 내 인생의 왕이었는데 이제부터는 내 안에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이제 내가 내 인생의 왕이 아니라 예수님을 내 인생의 왕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이제 내 인생의 왕이 내가 아니고 예수님이 내 인생의 왕이라고 고백한다는 뜻입니다. 내 인생에 내가 왕이 되면 죄악의 길로 가기 때문에 예수님이 내 인생에 왕이 되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좋은 왕이시기 때문에 내 인생을 예수님이 통치하시면 내 인생이 잘되고, 형통하고, 축복을 받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 모든 나라의 왕이실뿐만 아니라 온 우주와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시며, 여러분 각자의 인생의 왕이십니다.   

오늘 종려주일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고백하신 것 같이 여러분도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고백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을 모든 세상
나라의 왕이시며, 
온 주우주와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시고,
내 인생의 왕이신
만왕의 왕이시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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