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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를 기다리는 자(누가복음 2:25-322018.12.16)

작성자

유은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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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를 기다리는 자
2018.12.16.
주일오전 

누가복음 2:25-32

호메로스의 작품 『오뒷세이아』에 보면 그리스 사람 오뒷세우스가 트로이와의 전쟁을 위해 전쟁터로 떠납니다. 부인 페넬로페는 전쟁터로 떠난 남편을 기다립니다. 마침내 10년동안의 전쟁이 끝나고 오뒷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여러 가지 일을 만나면서 또 10년의 세월이 더 흘렀습니다. 결국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부인 페넬로페는 남편이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여러 사람의 구혼자들이 페넬로페에게 남편을 기다리지 말고 자기와 결혼하자고 청원을 했습니다.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의 청원을 피하기 위해 묘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 지방의 영웅(라에르테스)을 위해 수의를 하나 짤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방에 큼직한 베틀 하나를 차려 놓고 고운 천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낮에는 큼직한 베틀에서 베를 짰으나 밤이면 그것을 다시 풀기 시작했습니다. 삼년 동안 그녀는 청혼을 피하기 위해 계략을 써서 들키지 않고 짜고 풀기를 계속하면서 오뒷세우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오뒷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와 메넬로페를 괴롭혔던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오뒷세이아』 (경기도: 숲출판사, 제2판(개정판) 2015), 51, 545.). 
    
인생을 살면서 어떤 것이든 기다리는 것은 어렵지만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인생의 모든 일이 갑자기 되는 것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무슨 일이든 이루어 집니다. 잘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모든 것을 기다려서 모두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6절에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여러분의 인생에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릴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이 속히 오셔서 여러분의 인생에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축복을 기다리셨다가 모두 축복을 받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 말씀 25절에서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사람이 있으니 그는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시므온이 살았던 당시의 이스라엘은 수백년간 그리스와 로마의 치하에서 식민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백년의 식민지 생활로 이스라엘 민족은 정체성마저 모두 사라져 버릴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이스라엘을 위로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동기 목사님중에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가장 잘 된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어려서 아버지가 일찍 돌아 가셨습니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살다가 어머니도 얼마 못 사시고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이제 세상에서는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소년 가정이 되어 집안을 이끌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하나님 잘 믿으면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말을 믿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 했습니다. 젊은날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말씀 하신대로 하나님이 복을 주실 날을 기다리며 인내하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기다리던 복을 주셔서 그 친구가 목사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여러분도 어떠한 고난 속에 있더라도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을 믿고 끝까지 하나님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와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25절 마지막에 보시면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시므온에게 성령이 함께 하셨습니다. 26절에 성령이 시므온에게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지시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27절에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한국에 선교사들에 복음이 전해 진 것은 1885년부터입니다. 10년이 지난 1895년에 장로교 세레교인 286명이었는데, 1909년 북장로교인은 100,000명, 교회는 1020개, 학생은 15,000명,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후 1914~1929년 사이에 장로교 세례자 60,000명, 감리교 세례자 17,000명 등 점점 성장했습니다. 북쪽에 선천, 용천, 의주 등 가장 기독교화된 지역에서는 주일에는 모든 가게 문을 닫고 교회를 다녔습니다. 

한국교회 초기에 이렇게 한국교회가 급 성장한 배경에는 1904년 2월 한일 의정서를 체결하고 1910년 8월 한일병합조약을 조약을 맺고 그리고 완전히 국권을 일본에게 빼앗긴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전해준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 백성들이 위로와 희망을 찾기 위해 교회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일제 치하 당시 교회가 민족의 희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안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꿈꾸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여러분이 여기 교회에 오신 것은 여러분의 노력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마치 성령이 시므온을 위로해 주기 위해 교회로 인도해 주신 것 같이 여러분을 교회로 인도해서 위로해 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분명코 하나님의 위로가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성탄절이 다가오면 문구점에 가서 도화지를 사와서 집에서 카드를 손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곤 했습니다. 눈도 그리고, 아기 예수님도 그리고, 교회도 그리고 참 그때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엇그제 저를 가르쳐 주셨던 영적인 아버지 같으신 모교회의 목사님으로부터 성탄절 카드를 받았습니다. 제가 먼저 보내드려야 하는데 먼저 받았습니다. 그 카드의 내용에는 목사님이 친히 붓글씨로 쓰신 ‘예수 답이다‘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제가 그 목사님으로부터 평생 배운 신앙을 한마디로 요약을 해 보라면 바로 ’예수 답이다‘입니다.’ 그 목사님은 평생을 예수님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한 주가 동안 예수 답이다를 묵상하면서 보냈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우리의 위로이고 답입니다.   
       
오늘 본문 27절에 시므온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을 때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보자마자 성령께서 바로 인생에 기다리던 위로가 바로 아기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28절에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찬송했습니다. 29절에 “주재여 이제는 말씀 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시므온이 평생을 하나님의 위로를 기대하며 늙을 때까지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이제 아기 예수님에게서 위로와 희망을 보는 순간 이제 안심하고 하나님의 품에 갈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6세기 초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보에티우스는 반역죄로 사형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는 감옥안에서 죽음에 대한 불안을 이기기 위해 철학이 자기를 위로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철학의 위안』이라는 책을 씁니다. 그는 그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철학이 보에티우스에게 말합니다.] 너는 지금 치유가 필요할 때이지 한탄할 때가 아니다...인간사의 구름으로 덮여 있는 너의 눈을 씻어 주어야 겠구나. 철학은 이렇게 말하고서는 옷을 모아 쥐고 눈물로 뒤범벅이된 나의 두 눈을 닦아 주었다.”(보에티우스/ 이세운 옮김, 『철학의 위안』 (서울: 필로소픽, 2014), 32~33.)    

보에티우스는 죽음앞에서 자기의 불안한 마음을 위로받기 위해 철학을 동원해서 위로를 받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철학을 가지고는 진정한 위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의 불안함에 대해 안정과 위로를 받기 위해 여러 가지 길을 찾아봅니다. 물질에서 희망과 위로를 얻으려고 하지만 그것으로는 진정한 위로를 얻을 수 없습니다. 먹고, 놀고 세상을 즐기는 것으로 인생의 고통과 죽음의 고통을 잊어보고, 위로를 얻어 보려고 하지만 그런 것들로부터는 진정한 위로가 없습니다. 오직 온 세상을 위로의 빛으로 비추시는 예수님을 만날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위로를 받을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오면 예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위로해 주시고 참 안식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위로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예수님이 여러분의 인생에 큰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세상의 위로를 기다리지 마시고 예수님이 주시는 위로를 기다리는 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이
세상이 주는
위로를 기다리지 
말게 하시고
예수님이 주시는
위로를 
기다려서 큰 위로와
축복을 받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조회수 : 92 , 추천 : 0 , 작성일 : 2018-12-16 , IP : 211.176.9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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