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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기도로 이기라(마태복음 26:36-46/2019.4.7)

작성자

유은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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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기도로 이기라
2019.4.7.
주일오전

마태복음 26:36-46

셰익스피어의 작품 『줄리어스 시저』에 보면 시저의 부하 브루투스가 반란을 일으켜 시저를 살해합니다. 시저가 죽어가면서 “브루투스 그대마저?”라는 유명한 말이 이 작품에 나오는 말입니다. 브루투스는 시저의 야심 때문에 자기가 시저를 죽였다고 백성들을 안정시키며 시저를 죽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브루투스의 입장에서는 시저의 친구인 안토니의 지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브루투스는 안토니를 단상에 세우고 자신을 지지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안토니는 죽음을 무릅쓰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루투스는 시저가 야심가라고 말하였소. [그러나] 시저는 많은 포로들을 로마로 데려왔으며 포로들의 몸 값은 모두 국고에 들여 놓았소. 어찌 이것이 시저의 야심이란 말이오? 가난한 사람들이 배고파 울부짖을 땐 시저도 함께 울었소. 야심가란 이보다 더 냉혹한 마음에서 생기는 법이오.” 이 말은 들은 백성들은 오히려 브루투스가 야심을 가지고 시저를 죽였다고 판단하고 브루투스를 잡으라고 외쳤습니다. 브루투스는 도망가다가 자기 칼로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셰익스피어/ 신상웅 옮김, 『한 여름밤의 꿈/베니스의 상인/말괄량이 길들이기/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줄리어스 시저/리처드 3세』 (서울: 동서문화사. 2008), 384-394, 424).

안토니는 죽음을 각오하고 자기 앞에 닥친 고난과 싸워 이겼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든지 고난이 닥칩니다. 그러나 고난이 닥쳤을 때 고난을 피하지 말고, 그 고난과 정면으로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고난은 당장은 괴롭지만 고난과 싸워서 이길 때 더 큰 열매를 얻게 됩니다. 시편 119편 71절 말씀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여러분 앞에 닥치는 고난을 피하지 마시고, 고난과 정면 승부를 하여 고난을 이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해야 하는 것 때문에 고민이 되어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37절과 38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마음이 고민하고 슬퍼하사 제자들에게 말씀 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 때문에 마음에 고민이 되어 죽을 만큼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39절에서는 기도하시면서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하실 정도였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쯤 학교에서 친구에게 10원을 빌려서 학교앞 가게에서 맛있는 것을 사먹었습니다. 그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그 친구가 어제 빌린 10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제 큰일 났습니다. 어제는 아무 생각없이 10원을 빌려서 먹을 것을 사먹었는데 돈이 없어서 갚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친구가 만약 내일 안 가져오면 하루에 10원씩 올린다고 했습니다. 이틀째 주지 않아 벌써 30원으로 올랐습니다. 그 다음날 학교가서 그 친구를 볼 생각을 하니까 너무 고민이 되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인생 최초로 가출을 했습니다. 찻 길를 따라 하루종일 갔다가 다시 찻 길을 따라 집 근처로 돌아왔는데 벌서 밤이 되었습니다. 집근처에 가보니까 식구들이 저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골목에 숨어 있다가 발각되었습니다. 집에 들어가 그동안의 이야기를 했더니 10원을 주시면서 내일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10원 갖다주고 모든 것을 끝냈습니다. 어린 마음이지만 그 몇일간 제 마음은 괴로워서 죽을 것 같았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끊임없이 크고 작은 고난을 만나면서 고민하고 슬퍼하고 마음이 고민이 되서 죽게 될 정도로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고 예수님의 마음도 고민하고 슬퍼하고 죽게 될 정도로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이 연약하며 고민하고 슬퍼하고 죽게되는 마음을 가지신 분으로 오신 것은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슬퍼하고 죽게되는 마음을 동정하고 위로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고난을 당하면서 고민하고 슬퍼하는 마음을 예수님 충분히 이해하고 계십니다. 이 시간 여러분이 고난 때문에 고민하고 슬퍼하는 마음을 예수님이 위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의 후계자로 알려진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스는 맹수형을 받아 로마로 끌려가는 중에 로마인들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여러분이 방해 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꺼히 죽을 수 있습니다. 저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놔 두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제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밀이니 맹수의 이빨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결국 이냐시오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로마에 가서 맹수형을 받고 순교했습니다(박미경 역주, 이냐시오스 일곱 편지 (왜관: 분도출판사, 2000), 87). 

이냐시오스가 맹수형을 받을 담대한 마음이 생긴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히 죽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 있는 고난이 비록 두렵더라도 그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뜻을 붙잡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9절에서도 예수님이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고난이 싫어서 고난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면서도 만약 하나님의 뜻이라면 고난의 잔을 마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모든 고난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그 고난을 담대하게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앞에 닥친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해 여러분을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앞에 닥친 고난을 피하려고 하지 마시고, 그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시고 그 고난을 끌어안고 싸워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41절을 보시면 예수님이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돌아왔을 때 제자들이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고난이 닥쳐 올 때 그 고난과 싸워 이길 힘이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고난앞에서 언제나 인간적인 내 뜻을 따르기 때문에 고난이 두렵고 피하게 되고, 고난과 싸우는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 고난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서 담대히 고난과 싸워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고난이 앞에 오면 두려워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고난과 싸우고, 믿음으로 능히 고난을 이기시는 분들이되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믿는자들이 일상에서 받는 모든 고난은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위한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기꺼히 고난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42절에 예수님은 다시 두 번째 동일하게 기도하시고, 44절에 세 번 째도 동일하게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세 번 기도를 하고 나신 예수님은 이제 고난을 이길 만큼 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46절에 일어나라 함께 가자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며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시기 전에는 마음이 고민하고 슬퍼하고 마음이 죽게 되었었지만 이제 세 번 기도하면서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신하자 예수님의 행동이 담대해 졌습니다. 

우리 첫 아이를 낳을 때입니다. 아이가 나올 조짐이 있어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이가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열시간은 진통을 해야 나온다고 했습니다. 저는 처음이라 너무나 불안했습니다. 고통은 아내가 당하는데도 저도 마음에 불안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니까 기도할 때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마침 병원 뒤에 산이 있어서 산으로 뛰어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아내가 애를 잘 낳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한참을 기도하는데 마음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엄마 배에서 당연히 나오도록 창조되었느니라’ 그 순간 마음에 평안이 밀려왔습니다. 그후 10시간 넘게 기다리면서도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마음에 평안이 넘쳤습니다. 아마 제 아내도 기도하면서 애를 낳았을 겁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 앞에서 고민하고 슬퍼하시고 마음이 죽게 되었었지만 세 번의 기도를 통하여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모든 고난을 담대하게 맞이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난과 싸워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우리도 예수님같이 고난앞에서 기도하고 고난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감당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이 고난을 기도로 이기신 것같이 여러분도 고난 가운데 기도하면서 고난을 이기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이
고난속에서
고민하고 슬퍼하지 말고
기도로 고난을 이기고
기도중에 고난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고난과 싸워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회수 : 10 , 추천 : 0 , 작성일 : 2019-04-07 , IP : 211.176.9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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