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창문교회(WINDOW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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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이용도의 영성생활 -완덕을 향한 진보의 관점에서-

작성자

유은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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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가 1993년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영성학(담당: 심종혁교수)수업시간에 기말과제로 제출한 내용이다. 

이용도2)의 영성생활 -완덕을 향한 진보의 관점에서-   

I. 들어가는 말

사도 바오로는 필립 3,13.14을 통하여 영성 생활의 진보에 대하여 말하였다.
3) 그러나 영성생활의 진보에 관한 교리가 처음 등장한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끌레멘스에게서였다. 그는 영성적 향상의 목적은 영지인이 되는데 있다고 하였다. 4) 니싸의 그레고리오에게서도 영성 생활의 진보에 대한 학설을 발견 할 수 있다.5) 아우구스티노 역시 진보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퇴보할 뿐 아니라 넘어질 위험까지 있다고 말하기를 서슴치 않았다.6) 4세기 말부터는 영성생활의 진보에 대한 단계들을 규정하는데 관심했다. 수차례에 걸쳐 모색한 끝에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에 의해 세 단계로 이루어지는 최초의 확고한 구별이 정립되었다. 즉 이미 익숙해 있는 신플라톤 사상의 용어를 빌려서 정화, 빛, 하느님과의 합일이라는 연속적인 세 가지 과정, 다시말해 정화의 길, 빛의 길, 합일의 길에 대하여 말하였다.7) 그러나 훨씬 후대에 위 아레오빠지따의 작품에서 비로서 에바그리우스의 도식에 필적할 새 도식이 등장했다. 즉,정화의 길, 조명의 길, 일치의 길을 제시했다.8) 
물론 중세에 와서는 지금까지의 구분과는 다른 구분이 나타나기도 했다. 즉 영성 생활의 진보를 초심자(incipientes), 진보자(proficientes), 달도자(perfecti)로 구분했다. 13세기 부터는 이 3분법이 아레오빠찌따의 3분법과 병용되기도 하였다. 수덕신학의 역사에는 또 다른 분류도 있었다. 예컨대 보나벤뚜라는 “초자연적 습성(habitus)"의 3분법(주부덕,성령의 주부적 은사,습성으로본 참된 행복들)을 논하기도 했다.9) 이 소론에서는 주로 정화, 조명, 일치의 완덕을 향한 진보의 관점에서 이용도를 연구하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지금까지의 개신교의 대표적인 신비가10) 인 이용도를 개신교 신학의 관점이 아닌 가톨릭 신학의 관점에서 조명해 본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여겨진다.

II. 정화의 단계

성덕의 본질을 이루는 하느님과의 친밀한 일치에 이르기 위해서는 죄와, 근본적인 동조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세상 및 육신,그리고 마귀와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오히려 영혼과 육신의 모든 기능과 능력이 강력하고 깊이있게 정화될 필요가 있다. 정화과정에서 하느님은 보다 좋은 부분을 자신이 맡으신다. 그러나 하느님의 활동을 거스리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려면 우리 자신이 은총의 도움을 받아서 노력해야 한다.11) 외적 감각을 능동적으로 정화하는 목적은 감각의 과도한 사용을 억제하여 믿음으로 조명된 이성의 법칙에 그 감각을 예속시킴이다. 단련된 인간의 육신은 훌륭한 성화의 도구이지만, 본성이 타락한 현 상태에서는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거스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만일 이러한 면이 제어되지 않는다면, 걷잡을 수 없게되어 마침내 그 욕구는 영혼의 영성적인 완덕에 장애물이 될 만큼 심각하게 된다. 성 바울로는 육신을 극기할 필요성을 말했으며(1고린 9,27 갈라 5,24), 십자가의 성 요한도 감각의 정화가 영혼이 도달할 신적 결합과 밀접하게 결부되어있음을 말하였다(깔멜의 산길 제3권,24장).12) 이용도는 감각의 과도한 사용을 억제하여 믿음으로 조명된 이성의 법칙에 그 감각을 예속 시켰다.


“나의 눈도 버리고,귀도 잘라 버리고,수족도 버리고,전체가 구르기 쉽
게만 되어지사이다.나의 그것들이 있으면 나는 구르기에 거리낄 것이
심히 많겠나이다.그러면 주께서 내가 보는 대신 보아 주시고,듣는 대
신 들어 주시고 동하는 대신 주께서 동케 하실 것이오니,나의 이,목,
구,비,수,족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이까.곧 주의 눈이 나의 눈이요,주
의 귀가 나의 귀였나이다.나의 눈은 내 자체에 있지 않고 주에게 있
나이다.그런고로 나는 주를 통해서만 보고,주를 통하여만 듣고, 주를
통하여만 걷고,동작하는 것이었읍니다.“13)

내적 감각의 정화-기억,상상,상식,평가력-중 기억력은 좋고 나쁜 종류의 지식을 축적하기 때문에 정화할 필요가 있다. 기억력의 능동적 정화를 위해서는 지난날의 죄를 잊어버려야 하며 지난날의 상처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기억을 하느님께로 지향케 하고 세속사와의 접촉에서 그것을 정화하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교적 희망의 동기를 생각해야 한다.14) 또한 기억의 적극적인 정화와 관련되는 것으로,하느님의 은혜를 생각해야 한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한량없는 은혜와 허물을 용서받은 번수와 벗어난 위험과 받은 사랑을 회상함은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더욱 충실하게 그분의 은총에 부응하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훌륭한 방법이 된다.여기에 불순명, 배반, 배은망덕 및 은총의 거부행위까지 함께 회상한다면 영혼이 겸손과 당혹으로 충만하여, 더욱 잘 살기 위해 배나 깨어 노력할 필요성을 체험하게 된다.15) 이용도는 하느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받은 사랑을 회상함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부응하려는 욕망을 불러 일으켰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십니까? 그리하면 병도 유익함이 되고 가난함 도 유익함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심령상으로 무한한 은혜를 주시는 표요,무한한 교훈이요,무한한 징계인 줄 압니다.그 가운데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교훈을 찾으십시요 몸 건강할 때 찾을 수 없는 은혜는 병 가운데서라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그것만 찾으면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고 병들어도 좋고 건강해도 좋고 다 유익함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병도 있어야 마땅하고 가난과 다른 모든 난관이 있어야 마땅하며 죽음도 있어야 마땅합니다.그러한 이상 그런 모든 것이 다 인생에게는 큰 은혜요 교훈이 될 수 있습니다.자식에게는 아프라고치는 부모의 채찍도 은혜요 달콤하게 먹으라고 주는 사탕도 역시 은혜인 것과 같읍니다.그러한 고로 모든 것을 다 신중한 태도를 감사함으로 받을 것입니다.”16)

감성적 욕구는 감각을 통해서 알려진 선을 추구하는 하나의 기관적인 기능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성에 의해서 감지되는 선을 추구하는 이성적 욕구나 의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감각적 선이나 악을 감지함으로써 일어나는 감성적 욕구운동인 정욕은 감관안에서 강하거나 약한 변화를 동반 한다. 이 정욕이 정신을 혼란 시키고 기도와 반성을 방해하고 판단을 편벽되게 하며 상상력을 자극하고 의지력을 약화시켜 양심을 혼란시키기 때문에 정욕의 정화가 필요하다.17) 이용도는 정욕의 힘을 윤리적으로 선하고 유익한 대상들에게 향하게 함으로써 승화나 감정전이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신앙이란 곧 생명의 역환이다.세상에 살던 죄악의 생명은 하늘에 사는
예수의 생명과 바꾸어지고 근심과 걱정과 염려로 애쓰던 나의 생명은
환희와 평화와 용기로 날뛰는 그 생명으로 변하여지고 땅위에서 물욕
과 정욕에 쌓여 오래 잘 살기를 꿈꾸던 나의 생명은 이를 저주하여 버
리고 천에 살려는 생명으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지금 까지는 지상에
서 있는 나의 육이 이것의 욕심대로 물위에서 만족을 찾으려하여 그 보
수로는 번뇌와 고통 비애와 탄식 마지막으로 사망을 차지하게 되어 있
는 그 생명은 예수에게 갔다주어 십자가상의 제물이 되게 하고 그 대신
천상에 있어 나의 영이 성의를 따라 진리에서 참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그 생명을 예수님에게서 얻어 오는 것이었읍니다.“18) 

외적 감각과 내적 감각 및 감성적 욕구의 능동적 정화는 그리스도교적 완덕의 높은 단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지성과 의지의 탈선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화가 정신의 심부에까지 미칠 필요가 있다. 결국 수동적인 정화는 통상적인 은총 아래 자신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을 완성 시킨다. 지성을 정화함에 있어서 영혼은 현세 생활에서 지성을 하느님과 일치시키는 직접적이고 적절한 수단이 되는 믿음의 빛에 의해 자신이 인도되도록 해야한다는 명확한 원리가 길잡이로 제시될 수 있다.19) 십자가의 성 요한은 지성이 하느님과의 합일을 이루자면 감성에 속하는 모든 것을 깨끗이 비워야 하고, 고요하고 잔잔한 지성 안에 또렷이 비치는 것까지를 모두 벗어던져서, 하느님과의 합일을 위한 적절하고도 직접적인 오직 하나의 방법, 즉 신앙에만 의지하는 것이며,따라서 영혼의 신앙이 크면 클수록 하느님과의 합일도 더욱 밀접하게 된다고 보았다.20) 이용도는 지성의 완전한 정화에 도달하여 하느님과의 밀접하게 일치되기를 위해 신앙의 길을 걸어야함을 말했다.

“우리의 신앙은 소망이 확립하고 인내가 완성될때 비로소 생명 신앙이
되어 우리를 움직이느니라.그런고로 생명 신앙은 환난과 시험중에서
연단을 받아 소망의 확립을 보며 인내의 완성을 보게 되는 것이니라
따라서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신앙이 되는 것이다.예수를 향하여 소망
하고 예수를 인하여 인내하라.네 소망과 인내가 다 예수를 중심으로
하고 움직이라 만일 일초라도 예수에게서 떠나면 이는 어디든지 방향
없이 나가 떨어지고 말 신앙이니...“21)

이성적 욕구라고 불리는 의지는 지성에 의해 알려진 선을 추구하는 기능이다. 이것은 감각에 의해 알려진 선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감각적 욕구와는 다르다. 인간의 본성과 그 기능들은 모두 원죄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일단 하느님을 향한 지향성이 약화되었고 또 의지 자체도 쉽게 자기 본위로 기울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크나큰 노력을 기울이고 은총의 도움을 받아 의지가 하느님의 창조에서 나왔을때 향유했던 최초의 흠없는 모습을 되찼도록 힘써야 한다.그러나 피조물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의지를 하느님께 완전히 종속시킬 수 없다.22) 이용도는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위해 자아에서의 이탈을 통한 의지의 정화를 말했다.



“너는 아무것도 되려하지 말지어다. 네가 무엇이 되어 필요할지- 아니
무엇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도 세우지 말지어다.하느님은 벌써 너에
게 대한 충분한 설계와 심산이 있었나니,너는 다만 전체를 그에게
맡기고 다만 그가 부절히 너에게서 일하시기만 기다릴 것이었나니라
주께서 충분히 주므르시어! 무엇이든지 너는 되지 아니치 못하리니
,그 때에 무슨 일들이 명명될지 알 자가 없었나니라.그럼에도 불구하
고 무엇이 될 지 알지도 못하는 흙덩이를 갖다 놓고 스스로 이름을
지어 붙여 가지고 나는 이것이 되겠다 하는 자여! 네 얼마나 어리석
은 자임을 알지 못하겠는가.너는 될대로 되리라.무엇이든지 하나 되
리라.무엇이든지 주께로부터 너에게 오는 이름 하나를 허락하시고 그
이름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라.“23)

이와같은 정화의 과정은 자신의 결점을 정화하기 위하여 은총의 도움을 받고 스스로 노력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능동적 정화의 단께이다.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영혼의 정화에서 하나님만이 행할 수 있는 즉, 감성의 밤과 심령의 밤으로 구분되는 수동적 정화의 과정이 있다.24) 수동적 정화의 필요성에 관한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가르침은 어두운 밤 제1편에 초심자들의 불완전성을 다루면서 나타난다. 초심자가 제아무리 스스로를 절제하고 하는 일,당하는 일을 바로 잡아 나간다 해도 하느님이 이 밤의 정화를 통하여 수동적으로 그 사람을 붙들어 주지 않는 이상, 다는 물론 조금도 무엇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25)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느님이 수동적인 방법으로 영혼에게 손을 쓰지 않는 이상 영혼이 아무리 힘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자신의 불완전을 바로 잡을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수동적 정화의 두 가지 중요한 표현으로 감각의 밤과 영의 밤에 대하여 말한다. 첫째,감각의 밤은 영혼을 매우 고통스러운 상태에 빠뜨려 성화를 바라는 가운데서 인내력을 가혹하게 시험하는 깊고 집요한 무미건조 상태의 연속을 말한다.26) 이용도는 1932년 교계로부터 이단 정죄를 받으면서 감각의 밤의 여정을 격게 된다.


“아 내 마음이 심히 민망하여 죽게 되었읍니다. 나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 하옵니다.지금 주는 슬퍼하시고 민망해 하십니다.아-내 무슨 말을
하리요.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뜻대로 행해야겠습니다.주님의
부르시는 소리 들으셨읍니까.들으셨거든 오십시요,때는 가까와옵니다
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내몸과 내 마음 심히 피곤하오니 주의 나라
높은 곳에 나를 데려 가소서.... 이름 없이 지구의 일각을 밟고 가!
샤론의 들 꽃같이! 나는 줄,지는 줄,세상이 다 모르되,다만 하늘만이
빈들에 속삭이는 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소문없이 퍼지는 그 향
기에 하늘이 웃음웃고,자취없이 눈 감을때,적막한 밤 작은 별의 무리
들이 조상을 해!이것이 값없는 야화의 무상의 영광이다.평생 소원이
었던 것이구려.아 그러나 저를 낸 조물주는 여기에 가공을 하여 옮겨
놓으니,아 요란한 대로변 가시밭에 한송이 백합화가 되었구려.고요히
이름없이 지나갈 고독한 야화!이제는 소문 놓고 노방에 찢길 이름 좋
은 그러나 역시 고독한 백합화로구나.“27) 

감각의 밤이 가져다 주는 이러한 고통스런 시련의 기간은 경우에 따라서 각기 다 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 기간이야말로 하느님이 영혼을 들어높이시고자 하는 바로 그 사랑의 단계와 영혼이 거기에서 정화되어야할 많고 적은 불완전의 불순물에 달려 있음을 지적한다.그러므로 감각의 수동적인 밤은 정화의 길에서 조명의 길로, 수덕적 국면에서 신비적 국면으로, 영성 생활 안에서 묵상하는 이들로부터 주입적 관상의 광채로 비춤을 받기 시작하는 이들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된다.28) 둘째, 영의 밤은 감각의 밤을 통해 이미 시작 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정화를 완성함을 목표로 삼는 극히 고통스런 일련의 수동적 정화로 구성된다. 이 밤에 겪는 괴로움의 중요한 원인은 분명히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음이다. 영혼이 하느님과 사귐으로 얻는 모든 기쁨과 만족을 잃게 된다. 영혼은 자신안에 갇히고,자기 자신의 비참과 비천함에 직면한다.영혼은 전에 없이 더 하느님께 봉사하고 싶지만 하느님이 받아 주실 것 같지 않게 느껴진다. 실제로 완덕의 높은 상태에 있더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기 보다는 오히려 버림받은 느낌을 가진다. 이 고통에서 풀려날 수만 있다면 죽음이라도 달게 받아들일 것 같다.
29) 이용도는 자신안의 불완전과 비참성을 보았다.

“주여,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주님은 너무나 천한 주님이시었나이다.너
무나 무력한 주님이었고,너무나 비근한 주님이었나이다.주여 나를 긍
휼히 여기사 고귀한 당신의 형상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당신의 높음,
당신의 넓음에서 당신의 사랑을 맛보게 하여 주옵소서.주여,나로 하여
금 모든 것을 끊어 버리고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
는 불구자를 만들어 주옵소서.주여,나는 아직도 사업욕에 잡히여 있
사옵니다.오-주여 나를 아주 죽여 주시옵소서.보지도 못하고,듣지도
못하고,다른 것은 생각도 못하는 참 병신을 만들어 주옵소서.“30)

영의 수동적 정화는 그것이 간헐적일 때, 조명 및 일치의 길을 통해 연장된다. 하느님이 영혼을 이 두려운 밤에 놓아두는 것은 신적 일치로 인도하기 위함이다.31) 

III. 조명의 단계


영성 생활로 들어가기 위해 모든 사람이 거쳐 가야 하는 정화의 다음 단계를 조명이라 부른다.32) 정화의 과정이 악덕의 제거로 특징지어 진다면 조명의 과정은 미덕, 주로 애덕의 발전으로 특징지어 진다.33) 이용도는 애덕신앙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의 존경=사람에게 1의 선과 99의 악이 있느냐 그러면 나는 한개의 선
을 위하여 저를 사랑하고 존경하겠노라.세상에 1인의 선한 사람과 99인
의 악한 사람이 있느냐 그러면 나는 한사람의 선한 사람을 위하여 세상
을 귀히 알고 중히 여길지라.나는 나의 모든 선한 것을 그를 위하여 제
공하고 세상의 개선과 구제를 위하여 빌지라.나는 사람과 세상에 많은
악을 찾아 불평으로 삼지 않고 그 적은 선을 찾아 사랑과 존경으로 살려
하노라.하나님은 사랑이시매 우리는 사랑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을 알지
니라.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못하나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저를 신앙하기 불가능하니라.사랑으로 시작되지 않은 신앙은 허위의 신
앙이니 이는 사람을 죽일 신앙이니라.세상에 신앙에 사는 사람이라하여
쟁투가 많은 것은 사랑에 근거를 두지 않은 신앙 곧 무애신앙의 소유자
가 많은 까닭이니라. 사랑은 곧 생명이라.사랑없는 신앙은 생명없는 신
앙이니라.교리와 신조의 송독,교회 출입의 형식,이런 신앙의 형식(껍질)
으로 신앙의 전부를 삼아 스스로 속는 자 그 얼마나 많은 현대인고,네가
신앙의 소유자이냐 그러면 너는 사랑의 소유자가 될지어다.“34)

이용도의 애덕적 삶은 끊임없이 열려진 생활적 사랑, 무차별의 사랑으로 나타났다.35) 

“신앙의 차이가 다소 있는 자라 하더라도,도적이나,창부나,살인강도라
할 지라도 그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릴것이며...
나는! 나의 원하는 바는 세상이 버린 사람,세상에서 쫓겨나거나 몰리
워나는 사람을 받아 그를 거두어 손을 잡고 울며 살려고 합니다.나는
쫓기우는 자를 거두어 그들과 함께 우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믿습니
다.“36)

실제로 이용도는 그의 삶속에서 이 무차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다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37) 그러나 이용도는 이 애덕의 실천을 통하여 샘솟는 기쁨을 맛보았다.


IV. 일치의 단계


일치의 과정은 이 세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영성 생활의 최고의 정점으로 특징지어 진다. 이 과정은 관상이 정상적으로 전개되는 완덕의 길이다. 이 상태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성부께로 향하여 나아가게 하는 성령의 힘에 의해 완전히 자기 자신을 내 맡기는 가장 영혼이 깨어 있는 상태이다.38) 이용도는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는 합일의 원리에 대하여 말하였다.


“주님은 나에게 끌리시고,나는 주님에게 끌리어,하나를 이루는 것이었
읍니다.나는 주의 사랑에 삼키운 바 되고,주는 나의 신앙에 삼키운 바
되어,결국 나는 주의 사랑 안에 있고 주는 나의 신앙 안에 있게 되는
것이었나이다.아-오묘하도소이다.합일의 원리요! 오 나의 눈아,주를
바라보자.잠시라도 딴눈 팔지 말고 오직 주만 바라보세.나의 시선에 잡
힌바 주님은 나의 속에 안재하시리라.오-나의 눈아.일심으로 주만 바라
보자.주께서 피하시랴 피치 못하시게 다만 그만 바라보자.“39)

이용도는 또한 아가서에서 주제를 끌어드려 성애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성녀 데레사의 표현에 의하면 이것은 합일의 생활 그 자체가 활짝 피어난 것이고, 영적 결혼의 최종적인 결실을 이루는 것이다.40) 

“자매여-그대는 영원히 주님의 신부이니라 주께서 그대를 얻었으니
곧 눈물과 피를 내어 놓고 얻으셨느니라. 저 십자가는 그대를 얻으신
주님의 승전비요 또 영원히 있을 기념비니라. 그대 하나를 취하기
위하여 그대의 주님은 얼마나 애를 쓰셨는지 그 정지의 혹 만분지일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대는 주야로 염념사지하여 주님의 사랑을 찾고
찾으라! 그리하여 저-깊은 사랑의 내전에 까지 찾아 들어가라 그곳은
한번 들어간자 나올래야 나올 수 없는 애의 지성소니라.거기서 그대는
주의 정체를 포옹하리라 그리고 천국을 노래하며 그 귀한 영광을 얻은
그대의 눈에는 감사의 눈물! 진주와 같이 솟아날 것이니라. 게달의
장막같은 너는 솔로몬의 휘장같이 빛나고 고울 것이니 주 그 휘장안에
계셔 사랑을 노래하실 것이니라. 마음을 고요히 하고 말을 적게하고
고요히 고요히 그 품안으로만 기어들어 가시라 하노라 사람을 두려마라
또 사람을 미워도 말고 업신여기지도 말지어다 누구든지 존경하고 긍휼
히 여겨 그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데로 선을 베풀지어다.“41)

이용도의 신비체험의 경험은 환시나 탈혼 또는 황홀경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지극히 순수하게 하느님의 은총에 도달함으로써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사랑의 표적-그 못 자국은 나를 사랑하신 표적,내가 주를 알아 보지
못할때(사랑하지 못할때) 주는 그손을 들어 나에게 보이며 보라 보라
이 못 자국은?
오-그러나 그러나 나는 주를 사랑하는 아무 표적도 없다.내 손을 보아
도 사랑의 표적은 있지 않고 발을 보아도 거기에도 있지 않구나.나의
얼굴을 보아도 주를 사랑하는 표적이 없구나.
오-주여 나는 주를 사랑합니다.그러나 주가 사랑의 표적을 보이라면
그것은 아직 가지지를 못하였읍니다.표적은 없으나 내가 주를 잊을수
는 없읍니다.아무 표적없이 주를 사랑하오니
아-나에게는 표적이 없는 사랑뿐.“42)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이용도의 모습은 그의 기도생활에 잘 나타나 있다.


“대지의 꽃이 웃고 장안의 남녀 꽃을 찾아 이리오고 저리 가는 화창
한 봄날 목사님은 오직 그 산 기슭에 엎드리었읍니다.
폭양이 등을 지지고 토석이 불덩인듯 더웁고 사할이 숲 사이에 꿈틀
거리는 여름 한 낮에 목사님은 오직 그 산 기슭에 엎드리었읍니다.
높은 하늘이 검은 빛에 물들고 가을 찬 바람 초목 끝에 춤추고 벗은
벌판에 서리 온 가을 새벽 목사님은 오직 그 산 기슭에 엎드리었읍
니다.초목이 치를 떨고 천지가 얼음세계로 되고 얼음 세계에 눈까지
퍼내리는 그 겨울밤을 목사님은 그 산 기슭에 엎드리었읍니다.
주의 음성 들은 그 몸 그저 자기를 버리고 겟세마네 동산 찾아 주와
함께 엎드리노라.
주가 부르시는 대로 찾아가서 그의 몸은 밤이든지 낮이든지 주님앞
에 엎드리도다.“43)

V. 나가는 말


이용도의 영성생활은 완덕을 향한 진보의 삶이었다. 비록 그의 신비가로서의 영성생활을 이해하지 못해 이단정죄의 아픔속에서 일생을 마쳤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 학계의 학자들 에게 그의 영성생활을 재평가 받는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 글 역시 강의실의 발표이지만 아마도 가톨릭적 관점에서 이용도의 영성생활을 조명한 최초의 글이라는데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 오히려 이용도야말로 가톨릭적 영성신학의 관점에서 더욱 그의 영성생활의 진가를 올바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용도(1901.4.6-1933.10.2)는 개신교 감리교의 목사였다. 그의 약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01.4.6.황해도 금천군 서천면 시변리에서 이덕홍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남.
1914년 시변리 공립보통학교 졸업
1915년 개성 한영서원 입학(9년이나 다니고도 정식 졸업은 못했다)
1924년 봄 감리교 협성 신학교 입학
1925년 폐병3기로 학업중단
1926년 강동에서 첫 회심과 부흥회 시작
1928.1.28.신학교를 졸업(14회)후 강원도 통천으로 발령
1930. 주일학교 연합회 간사,전국에 부흥회 시작
1931.8.12.금족령을 받음.
1932.10 평양노회에서 부흥회를 단죄
1933.9.장로회 22회 총회에서 이단으로 단정
1933.10.2.오후5시 33세의 일기로 운명

3) 루이 부이에, 영성 생활 입문 정대식역(서울:가톨릭출판사,1992),p.332. 사도 바오로는 필립3.13.14“나는 다만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을 바라 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 입니다.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을 통하여 영성 생활의 진보를 따라야 함을 말했다.다른 곳에서도 사도 바오로는 갓 입교한 사람들을 우유를 먹은 다음에 보다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어린이들에 비유하여 말하고 있다.(1고린3,1 에페4,14)
4) K.라너, 영성신학 논총 정대식역 (서울:가톨릭출판사,1983),p.110.물론 이 사상은 2세기와 3세기에 걸쳐 일어난 이단적인 영지주의의 이상상과 반대되는 형태를 취한 것이었다. 여기서 영지인은 완전한 인간이다.
5) 그러나 실제로는 신비적 상승을 내놓는데 불과하다.순수 영혼을 거울삼
아 하느님을 뵙는다는것,한없는 열망이라는 희미한 어둠 속에서 하느님을 직접 체험한다는 것을 말할 따름이다.K.라너,영성신학 논총,p.112.
6) 루이 부이에, 영성 생활 입문,p.333.
7) 루이 부이에, 영성 생활 입문,pp,333-334. 적어도 이런 윤곽의 기원은 오리게네스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여러 가지 지혜서들을 읽는 방법을 다루면서, 이 지혜서들을 영성생활의 세 가지 단계, 즉 유아기, 청년기, 장년기(잠언,전도서,아가서와 연결)에 적용시켰다. 영성생활의 세가지 단계는 나중에 십자가의 성 요한에 의해 감각의 능동적 밤과 수동적 밤의 연속안에 빛과 어둠이 연속적으로 교차하는 리듬으로 매우 훌륭하게 정리되었다.
8) K.라너,영성신학 논총,p.112.에바그리우스 신비 사상과 아레오빠지따 신비 사상 사이에는 본질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성 생활은,성장이라는 관점에서는 대동소이하게도 신비적 영지를 얻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영성생활의 단계들이 실제로는 상이하게 나타나면서도, 그것들이 하느님께 대한 신비적 체험의 성장 발달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합치하고 있다.
9) 이처럼 상위하고 다양하게 등급이 매겨진 이 세 그룹을 사용하는 방법이, 영성 생활의 등급을 배열하는 방법을 결정한다고 본 것이다(K.라너,영성신학 논총,pp.113-115).
10) 개신교에서는 이용도를 개신교 신비가의 대표로 여긴다.그에 대한 연구가 다수 있다.민경배,”이용도의 신비주의,“ 한국기독교회사,1988.민경배,” 한국기독교회내의 신비주의-이용도의 고난 받으시는 그리스도 신비주의,“ 이용도목사 관계문헌집,pp.261-267.윤성범,” 이용도와 십자가 신비주의,“ 신학과 세계 4(1978),pp.9-30. 박봉배,” 이용도의 사랑의 신비주의와 그윤리성,“ 신학과 세계4(1978),pp.51-71. 권영화, ”이용도의 십자가 신비주의,“ 풀핓목회 7(1990),pp.38-43.변선환,” 이용도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신학과 세계 4(1978),pp.72-123. 이외에도 이용도의 영성과 관계된 자료로는 한숭홍,”이용도론I," 목회와 신학 5(1990),pp.202-213. 한숭홍,“ 이용도론II,” 목회와 신학 6(1990),pp.210-221. 송길섭, “한국교회의 개혁자 이용도,” 신학과 세계 4(1978),pp. 124-157.등등
11) 조던 오먼, 영성신학 이홍근역(왜관:분도출판사,1991),p.207.
12) Ibid,p.208.
13) 이용도,샤론의 들꽃 (서울:한국문연,1989),p.13.
14) 조던 오먼, 영성신학,pp.213-214.
15) 조던 오먼, 영성신학,p.214.
16) 변종호편, 용도신학 (인천,초석출판사,1986),p.15.
17) 조던 오먼, 영성신학,pp.214-216.
18) 변종호편, 이용도목사 서간집,p.85.
19) 조던 오먼, 영성신학,pp.218-220.
20) 십자가의요한, 깔멜의산길 최민순역 (서울성바오로출판사,1976),pp.122-130.
21) 변종호편, 이용도목사 서간집,p.118.
22) 조던 오먼, 영성신학,pp.221-223.
23) 샤론의 들꽃,p,37.
24) 조던 오먼, 영성신학,p.226.
25) 십자가의 요한, 어둔밤 최민순역 (서울:성바오로 출판사,1977),p.32.
26) 조던 오먼, 영성신학,p.228.
27) 변종호편, 이용도목사 일기,p.182.
28) 조던 오먼, 영성신학,pp.235-236.
29) 조던 오먼, 영성신학,pp.236-237.
30) 이용도, 샤론의 들꽃,pp.46-47.
31) 조던 오먼,영성신학,pp.238-239.
32) 루이 부이에,영성 생활 입문,p.357.그러나 이 두 단계가 마치 서로 관련이 없는 작용처럼 정화가 끝난 다음에 빛이 시작된다고 단순하게 말 할 수는 없다. 에바그리우스가 말했듯이 모든 그리스도교적인 정화의 원동력은 믿음이기 때문에, 사실상 먼저 기초적인 빛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참된 정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33) 루이 부이에,영성 생활 입문,p.379.
34) 이용도 일기,pp.177-178.
35) 변선환, “이용도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신학과 세계 4(1978),p.101.
36) 이용도 목사전,p.198.
37) 1932년 10월까지는 이용도에게서 책잡을것이 하나도 없었다.그러나 이때이후 이용도는 평양에와서 입류여 이유신과 함께 30일간 강신극을 자행하면서 태혼,자칭 주의 말들을 한 한 순명에게 소개장 하나를 들리어 보냈던 것이다.이것이 이용도 몰락의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민경배,한국기독교회사(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1988),p.394.
38) 루이 부이에, 영성 생활 입문,pp.379,383.
39) 샤론의 들꽃,p.68.
40) 루이 부이에, 영적 생활 입문,p.384.
41) 이용도 서간집,pp.157-158.
42) 용도신학,p.99.
43) 이용도목사 서간집,p.4.


참 고 문 헌

루이 부이에, 영성 생활 입문 정대식역 서울:가톨릭출판사,1992.
K.라너, 영성 신학 논총 정대식역 서울:가톨릭출판사,1983.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1988.
변선환, 이용도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신학과 세계4(1978),pp.72-123.
십자가의 성 요한, 어둔밤 최민순역 서울:성바오로출판사,1977.
조던 오먼, 영성신학 이홍근역 왜관:분도출판사,1991.
이용도,샤론의 들꽃 서울:한국문연,1989.
용도신학, 변종호편 인천:초석출판사,1986.
이용도목사 서간집, 변종호편 인천:초석출판사,1986.
이용도목사 일기, 변종호편, 인천:초석출판사.1986.
이용도 목사전, 변종호편, 인천:초석출판사,1986.

조회수 : 3430 , 추천 : 16 , 작성일 : 2008-12-11 , IP : 211.176.9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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