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창문교회(WINDOW CHURCH)

홈으로 창립동영상 교회안내 주보 교역자소개 설교동영상 설교원고 자료실나눔방 교회앨범 세례
 로그인 회원가입  

 

제 목

재세례파의 쉴라타임 신앙고백

작성자

유은호

홈페이지

http://

  The Schleitheim Confession of Faith

1527년 2월 24일

Brotherly union of a Number 
of Children of God
Concerning Seven Articles

우리가 지금까지 다루었고 일치를 본 조항들은 1) 세례 2) 출교 3) 주의 만찬 4) 세상으로부터의 분리 5) 교회의 목자 6) 칼 7) 맹세에 대한 것이다.

Seven Articles

I.  세례(Baptism)

세례는 회개와 삶의 변화를 반드시 수반한다는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살고, 그 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예하기를 소원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세례의 의미를 이렇게 이해하고 받겠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신자의 세례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황이 저지른 가장 크고 가증스러운 첫 번째 잘못인 유아세례를 거부한다. 우리가 기록으로 증언하며 사도들처럼 실천하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단순히, 그러나 굳은 결의와 확신으로 사도들과 같은 삶을 살고자 한다. 


II. 출교(Ban)

우리는 출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일치를 보았다. 출교는 주님께 자신을 드리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겠다고 헌신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세례를 받아 형제나 자매로 불리지만 어쩌다 부주의하고 잘못해서 죄에 빠진 사람들 위한 것이다. 그렇게 죄에 빠진 사람에 대해서는 말씀에 따라 개인적으로 두 번의 경고를 해야 하고 세 번째는 모든 회중이 보는 앞에서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공개적으로 훈계해야 한다 (마 18).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행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모두 한 성령, 한 사랑, 한 몸 안에서 빵을 떼고 잔을 나누고자 하기 위함이다.

III. 주의 만찬 (Breaking of bread)

우리는 주의 만찬에 대해서 하나가 되었고 다음과 같이 동의했다. 그리스도의 찢겨진 몸을 기억함으로 빵을 떼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과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를 기억하기 위해 같은 잔을 마시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세례를 통해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하나님의 회중 안에서 먼저 하나되어야 한다.

사도바울은 “우리는 주님의 식탁과 마귀의 식탁에 동시에 참여할 수 없으며 주님의 잔에 참여하면서 마귀의 잔에도 동시에 참여할 수는 없다”(고전 10:21)고 했다. 

어두움의 죽은 행실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빛 가운데 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귀를 따르고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나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다. 마귀 안에서 거짓말 하는 모든 사람은 결코 선한 삶을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한 성령, 한 믿음, 한 세례를 통해 한 몸 된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결코 한 몸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그 몸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주의 만찬에서 빵을 떼는 일에 대해서도 진실되게 하나가 되어야 한다.

IV. 세상으로부터의 분리 

우리는 사탄이 세상에 심어놓은 모든 사악한 것에서 분리하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일치를 보았다. 우리는 그것들과 함께 할 수 없으며 우리를 혼란케 하는 가증스러운 것들에 동조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이 없고 하나님과 연합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러운 행동을 한다. 그런 사람들로부터는 가증스러운 것 외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어디에도 선과 악, 믿음과 불신, 어두움과 빛, 세상과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것,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 그리스도와 바알… 사이에서 그 어느 것도 함께 사귀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님의 명령은 우리에게 너무도 분명하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고 구별된 삶을 살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그 분은 우리의 하나님이 될 것이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들이 될 것이다. (고후 6:17-18)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나중에 있을 바빌론과 이 땅의 애굽에 대한 심판과 고통에 참여하지 않도록 우리가 그것들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훈계하신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사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되지 않은 모든 것들은 가증스러울 뿐 아무 소용도 없기에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킬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모든 가톨릭 교회나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도 실천되고 있는 악습과 우상숭배, 교회 모임, 출석, 포도주 창고, 믿음 없는 보증이나 헌신 등 세상이 좋게 여기는 다른 모든 것들이 이에 해당되지만 하나님의 명령에는 위배되는 세상과 육체의 욕망을 따르는 모든 것을 말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싫어하시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셔서 우리를 분리하기 원하시는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과 그 분께서 보내주신 성령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 그러한 가증스러운 것들과는 결코 함께 할 수 없다.  

우리는 또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마 5:39)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친구들을 보호하거나 원수에 대항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칼이나 갑옷, 다른 어떤 종류의 폭력적이고 끔찍한 무기를 사용하는 것으로부터도 우리 자신을 분리시킨다.   

 
V. 교회의 목자 (Shepherds in the Congregation)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의 목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일치를 보았다. 하나님의 교회의 목자는 바울의 가르침대로 그 행실이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온전하고도 완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평가를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딤전 3장)

그러한 목자의 소임은 읽을 줄 알고, 권고할 수 있고, 가르치고, 경고하고, 훈계하고 심지어 교회에서 출교도 실행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자매, 형제들과 함께 온전한 기도를 드릴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며 주의 만찬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고 그 몸 된 지체들을 돌보는 모든 착한 행실을 바로 잡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교회는 세워지고 성장하며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그 이름이 칭송 받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하는 사람들의 행위는 멈춰질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목자의 권위는 그를 세운 교회로부터 인정받을 것이고 교회는 주님의 명령을 준수하고 복음의 가르침을 따라 살수 있을 것이다.

만일 교회의 목자가 어떤 일을 꾸짖을 때는 두 세 사람의 증인이 함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그는 홀로 사안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만일 누군가 죄를 범한다면 그는 공공의 자리에서 꾸짖음을 받을 것인데 이것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와 같은 범죄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다.

만일 교회의 목자가 끌려가거나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간 경우라면 그와 동시에 교회는 다른 목자를 세워서 그 전 목자의 역할을 감당 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어린 양들이 목자 없이 멸절될 수 있다는 경고를 받게 하고 목자를 잃은 슬픔을 애도함으로써 그들의 생명을 보전하게 하기 위함이다.     

VI. 칼의 사용 (The Sword)

우리는 칼의 사용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일치를 보았다. 칼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완전성 밖에서 사용될 수 있다고 (세속 정부에) 허락하신 것이다. 그것은 사악한 자들을 심판하고 죽이는데 사용하지만 선한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함이다. 칼은 사악한 무리들을 심판하고 죽일 수 있도록 법적인 효력을 지니고 있으며 세속 정부들 역시 똑 같은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범한 사람들을 훈계하고 배척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살인하지 말고, 단순히 경고하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말 것을 말하며 대신 출교시킨다. 그런데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참 뜻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그리스도인이 선한 사람을 보호하고 방어하며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악인에 대해서는 칼을 사용할 수 있거나 또는 반드시 사용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답변은 하나같이 분명한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우리에게 명령하셨고 우리가 친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차도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온유하셨으며 겸손하신 것 같이 우리의 영혼의 쉼을 그 분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돌로 쳐서 죽여야 한다고 율법을 인용한 사람들에게 자비와 용서를 베푸셨고 “더 이상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듯이 그리스도인 또한 죄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면 출교시키는 절차를 완전히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칼을 사용하는 것과 관련된 두 번째 질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속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불신자들이 하는 것처럼 판결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었는데 그 대답은 자명하다. 그리스도께서는 형제들 사이에서 상속 받은 것에 대해서 판결해 달라고 부탁을 받았을 때 거부하셨다. 우리 또한 그런 판결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와 다를 바가 없다.

칼을 사용하는 것과 관련된 세 번째 질문은 그리스도인이 치안 판사가 되는 것에 대한 답변 또한 자명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왕이셨지만 왕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는데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세상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똑 같은 방식으로 그 분을 따라야 한다.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서 걸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예수님 자신도 칼과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시는 가운데 말씀하시길 “이방 사람의 통치자들은 다른 사람의 주인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너희가 안다. 그 고관들은 사람들에게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너희는 저희들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마 20:26).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전부터 아셨던 사람들을 그 분의 아들과 동일한 형상을 갖도록 미리 정하셨다…” (롬 8:29)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십시오”(벧전 2:21)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칼을 사용하는 것과 관련된 질문은 그리스도인이 치안 판사가 되는 것이 유익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의 법은 육신을 따르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인의 성령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집은 세상에 속해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시민권은 하늘에 속해 있는 것이다. (빌 3:20) 그들이 싸우는 무기는 오직 육체에 대항 한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싸우는 무기는 영적인 것, 다시 말해 사탄의 우상숭배에 대항하는 것이다.  세상은 철제로 무장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진리, 의, 평화, 믿음, 구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 갑주로 무장한 사람들이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계시고 또한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도 그리스도를 통해 같은 마음을 품고 있으니 그 몸 안에 있는 지체들 가운데는 스스로 파괴하는 분열이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어느 나라든지 자기들끼리 나뉘어 싸우면 망할 것이다. 어느 도시나 가정도 나뉘면, 제대로 서지 못할 것이다”(마 12:25). 

VII. 맹세 (The Oath)

우리는 맹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연합하였다. 맹세는 싸움을 하거나 약속을 정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증하기 위해서 한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거짓이 아닌 진심으로 행해져야 한다. 그러나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하여 어떠한 종류의 맹세라도, 그것이 참이든 거짓이든, 하늘이나 땅이나 예루살렘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치셨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네 머리로도 (맹세)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맹세는 금지되었다. 우리가 맹세한다고 해서 지킬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는 몸의 가장 작은 부분 하나도 스스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마 5:34-37)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 단순한 명령을 믿지 않으며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도 자기 이름으로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시기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그의 하나님께서 되고 좋은 것으로 베푸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래서 어떤 약속을 할 때 맹세를 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에 대한 (성경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싶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받은 자들에게 이것을 확실히 나타내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게 하시려고 맹세로 그것을 보증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결코 변함이 없는 이 불변의 진리 때문에 더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히 6:13-20)  이것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거나 그 뜻을 방해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맹세하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맹세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맹세해서는 안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맹세에 대하여 그것이 구약성경에 나와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신약성경에서 금하실 리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맹세할 때 단지 하늘로나 땅으로 또는 예루살렘이나 머리로 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에 대한 답변은 이렇다. 말씀을 들어라.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이다. (마 23:22) 잘 생각해보라! 하늘로 맹세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보좌이므로 금지되어 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이 맹세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나님으로부터 들어야 하겠는가? 어리석고 눈이 먼 자들이여 도대체 무엇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보좌인가 아니면 그 보좌에 앉아계신 분인가?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만일 진실을 보증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일이 잘못이라면, 베드로와 바울이 한 맹세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에 대한 답변은 이렇다. 베드로와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 우리가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메시아에 대해서 증언했을 뿐이다. 증언은 그것은 선이든 악이든 현재의 일에 대한 증언이다. 시므온은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기를 “보라,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 받는 표징이 되게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라고 말한 것이다. (마 5:37)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너희는 ‘그렇다’라고 할 때만 '예'하고, 아닐 때는 '아니오' 라고 말해라. ‘예’ 나 ‘아니오” 이상의 말은 악한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마 5:37). 예수님께서는 ‘예’나 ‘아니오’라는 말 자체를 금지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 말이나 증언할 때 ‘예’ 나 ‘아니오’라는 대답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리스도는 ‘예’ 나 ‘아니오’를 분명히 말씀하신 분이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분의 말씀도 단순히 이해할 것이다. 아멘.


회중의 규율 


형제 자매들은 일주일에 적어도 서 네 번은 만나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기로 서약한 지체들을 서로 권면하기 위함이다.


형제 자매들이 모일 때는 항상 성경을 함께 읽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씀의 은사를 주신 사람은 다른 지체 들에게 그 뜻을 잘 설명하고 다른 사람은 잠잠히 들어야 하는데 이는 두 세 사람이 개인적으로 따로 이야기 하는 것이 다른 지체들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시편은 날마다 집에서 읽어야 할 말씀이다.


만일 어떤 지체가 다른 지체의 죄 범한 것을 보았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명령을 실천하듯,  죄를 범한 형제에게 경고하되 그리스도인으로서 형제 사랑의 방법으로 권면해야 한다. 


교회의 형제 자매들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것을 통용해서 나눈 것처럼, 특별히 공동의 기금을 마련해서 가난한 자들을 돕고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 어느 누구도 부족한 사람이 없도록 어느 누구도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이름으로 모인 형제들은 과식이나 과음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에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음식은 스프나 최소한의 야채 , 고기를 섭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주의 만찬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떠한 삶을 사셨고 어떻게 죽으셨는지를 기억함으로써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주께서 죽으신 모든 형제들을 위하여, 우리의 생명과 삶을 내어 주겠다는 다짐의 표시로써 형제들을 서로 권면하기 위하여 될 수 있으면 모일 때마다 자주 거행해야 한다.  

조회수 : 220 , 추천 : 0 , 작성일 : 2017-03-18 , IP : 211.176.93.70  

             

 

코멘트가 없습니다.

name?    comment    password  

total : 5775937
today : 489
yesterday : 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