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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구원 (고린도전서 1:18/2023.3.26)

작성자

유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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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구원
2023.3.26.
주일오전

고린도전서 1:18

20세기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는 그가 쓴 『역사의 연구』에서 문명의 성장은 도전과 응전을 통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건조화가 하나의 도전이[었지만], [그 가운데서 생겨난] 문명은 그에 대한 응전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 [따라서] 우리가 문명의 성장을 고찰했을 때, 문명 [성장에는] 도전과 응전의 드라마가 연속으로 나타난다.”(A. J. 토인비/ 홍사중 옮김, 『역사의 연구 I』 (서울: 동서문화사, 2016), 100, 421.). 

성경의 역사도 죄의 도전에 대한 은혜의 응전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 하셨는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죽게 되었습니다. 이 죽음은 육신의 몸의 죽음뿐만 아니라 영혼도 함께 죽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원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는 몸과 영혼이 죽는 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몸과 영혼이 죽는다는 것은 몸과 영혼이 지옥에 간다는 뜻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우리 몸과 영혼의 죽음의 순서를 보면 먼저 우리 몸과 영혼이 죽은 다음에 요한복음 5장 29절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오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는 말은 지옥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6절에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죽은자들은 이 첫째 부활 즉 생명의 부활로 나오고 둘째 사망의 다스림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둘째 사망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또 요한계시록 20장 14-15절에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몸과 영혼이 죽은 다음에 심판의 부활로 부활하여 둘째 사망 즉 지옥의 불못으로 들어가 영원한 형벌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원죄로 인하여 ‘반드시 죽으리라’는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5세기 초대 라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는 그의 『삼위일체론』에서 원죄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 인간 [아담]의 범죄가 아담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고, [아담의] 죄값이 모든 후손에게 지워졌다.”(아우구스티누스/ 성염 역주, 『삼위일체론』 (왜관: 분도출판사, 2015(초판), 1019.). 
          
18세기 개신교 개혁주의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도 그의 책 『원죄론』에서 원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원죄라는 말의 의미는 마음의 죄악 된 타고난 부패다. 아담의 첫 원죄에 대한 형벌을 아담의 후손도 받아야 한다. (...) [아담에게 하신] ‘반드시 죽이라’는 말씀에는 아담의 후손들에 대한 말씀도 들어 있다. (...) 아담은 범죄한 그때 영적으로 죽었고, 부패하고, 비참해지고, 절망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때 아담의 몸과 외적인 조건에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변화는 현세적 죽음의 시작이었다. (...) 하나님은 아담의 후손을 아담과 하나로 보셨다. 하나님은 아담을 온 몸의 머리로서, 전체 한 나무의 뿌리로서 다루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을 다루실 때, 모든 가지가 뿌리 안에 있었던 것처럼 모든 인류를 함께 다루셨다.”(조나단 에드워즈/ 김찬영 옮김, 『원죄론』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6(초판), 157, 331, 348-349, 514, 특히 514.).   

기독교 2000년의 역사에서 원죄론에 대해서 권위있는 두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와 조나단 에드워즈는 공통적으로 아담이 저지른 원죄는 아담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아담의 후손인 온 인류가 아담안에 있으며, 아담의 원죄가 모든 인류에게 전가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원죄에 대한 신학적 사상은 기독교의 정통신학입니다. 이런 주장은 두 신학자의 주장이 아니라 로마서의 말씀을 따른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그 후손인 여러분과 저를 포함한 모든 인류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대로 모두 지옥으로 가는 사망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사람이 몸이 아프면 병원에 진찰을 받고 치료를 받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합니다. 그래서 진찰을 하고 검진을 해서 병의 원인을 발견해서 치료해서 병을 고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몸의 병은 병원에 가서 고치려고 하지만 영혼이 원죄의 병에 걸렸다는 것은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영혼의 원죄의 병은 몸의 병보다도 더 치명적입니다. 육신의 몸은 죽으면 끝나지만 영혼의 원죄의 병은 치료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불못에서 고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내 영혼의 원죄를 찾아 내는 검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성경에 비추어 빨리 내 영혼의 원죄의 병을 발견하고 치료를 받아서 지옥으로 가는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가야 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원죄의 병을 검진받고 치료받아서 생명의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도는 로고스 즉,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을 줍니다. 아담의 원죄로 모든 인류는 아담과 함께 ‘반드시 죽으리라’에 따라 모두 지옥에 가게 되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아담와 모든 인류의 죄를 예수님이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6절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했습니다. 이제 아담과 아담의 후손인 여러분과 저를 포함하여 모든 인류의 죄를 예수님이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원죄의 형벌을 친히 담당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7절에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원죄로 모든 인류에게 사망이 들어왔지만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모든 인류는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었으니 이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까. 만약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어찌할뻔 했습니까 상상만 해도 두렵습니다.    

아담과 아담의 후손인 여러분과 저를 포함하여 모든 인류가 미래에 모두 지옥에 들어가는 사망을 받아야 했지만 한 분 예수님이 그 사망을 십자가 위에서 대신 받으셨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사망을 면하고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21장 23절에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는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담의 원죄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사건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담의 원죄의 저주를 대신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안에 있으면 우리는 사망의 저주를 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   
     
또한,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에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를 뿌려 속해야만 죄가 속해지도록 율법을 정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흘림을 예표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예수님의 피로 원죄를 속하는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가 쓴 『자유의지론』에서 인간의 선택과 자유의지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참다운 선을 우리가 향유하느냐, 아니면 결손되느냐는 우리 의지에 놓여 있다. (...) 또 각자가 어느 것을 뒤쫓고 끌어안기로 선택할지[도] [자기] 의지에 달려 있다.”(아우구스티누스/ 성염 역주, 『자유의지론』 (왜관: 분도출판사, 1998(초판), 125, 143.).  

이제 아담 이래로 우리의 자유의지로 다시 한번의 구원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예수님을 선택하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로마서 10장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6절에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지만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고 지옥에 갑니다. 내가 지금 살아 있을 때 예수님을 선택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선택의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선택하고 믿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이 선택은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옥을 가느냐 영원한 생명을 얻느냐의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하는 중요한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고
원죄를 속죄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회수 : 59 , 추천 : 0 , 작성일 : 2023-03-27 , IP : 1.224.21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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