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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 (사도행전 17:16-18/2023.4.9)

작성자

유은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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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
2023.4.9.
주일오전

사도행전 17:16-18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신의 아들인 헤라클레스는 힘이 센 사람입니다. 헤라클레스가 태어난지 8개월 되었을 때 헤라 여신은 헤라클레스를 죽이려고 뱀 두 마리를 보냈는데 헤라클레스가 침대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그 뱀들을 목졸라 죽였습니다. 8개월 된 어린 애기가 뱀을 죽인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신화에서 가능합니다. 신화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헤라클레스는 장성하여 자기 힘으로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사람들도 많이 죽였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휘드라 괴물이 헤라클레스의 옷에 독약을 묻혀서 그 독이 몸속으로 파고들자 너무 괴로운 헤라클레스는 산으로 가서 장작더미를 쌓아 놓고 그 위에 올라 불을 질렀습니다. 장작더미가 타는 동안 한 조각 구름이 헤라클레스 밑을 지나가며 천둥 소리가 울리면서 헤라클레스는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 뒤로 헤라클레스는 하늘에서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을 입었다고 합니다(아폴로도로스/ 천병희 옮김,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신화』 (고양: 숲출판사, 2004), 129, 173-174, 특히 174.). 

헤라클레스 신화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헤라클레스같이 힘이 세고 싶고, 죽더라도 하늘에 올라 다시 죽지 않는 불사의 부활의 몸이 되고 싶은 열망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화속에서라도 부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죽어서 다시 산 부활의 모델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신화로라도 부활하고 싶은 소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역사적인 인물인 예수님이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모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째 되는 날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갔을 때 무덤에는 예수님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여자들이 이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을 때 마태복음 28장 9절에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자들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여자들은 신화속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역사속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본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부활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데까지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같이 부활하게 됩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같이 부활하는 축복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읽겠습니다. 바울은 지금의 그리스 아테네인 그리스 아덴에 갔을 때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그리스 아덴은 신들의 왕국이라고 할 만큼 많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아테나 여신을 모시는 파르테논 신전, 제우스 신전, 테세이온 신전, 아폴론 신전, 포세이돈 신전 등 셀수 없는 신전들과 제우스 신을 비롯해서 올림푸스 12신을 대표로 하여 수천의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 신들을 조각해서 신전에 모셔 놓았습니다. 아덴의 그리스 사람들이 신전을 짓고 신들의 조각상을 만들어 놓은 것은 자신들도 신같이 되어 죽지 않는 불사의 부활의 몸을 입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독일의 유물론 철학자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von Feuerbach, 1804-1872)는 그가 쓴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은 인간을 신격화시킨 본질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에 불과하다. (...) [인간이] 신이 있다고 믿을 때 신은 존재한다. [따라서] 신은 [인간이] 상상된 존재이고, 환상의 존재이다. (...) 신은 인간의 마음의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루트비히 포이어바흐/ 강대석 옮김,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파주: 한길사, 2006), 63, 267, 381.  

포이어바흐의 말을 그리스 아덴 사람들에게 적용한다면 아덴 사람들은 자기들이 신처럼 죽지 않는 불사의 몸으로 부활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기들을 위해 우상을 만들고 신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상을 그리스 아덴 사람들에게 넣어준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호메로스를 비롯한 시인들이었습니다. 특히, 기원전 7세기 헤시오도스(Hesiodos, 기원전 740-670)라는 시인은 『신들의 계보』라는 책을 써서 최초의 신 카오스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신 크로이소스라는 신까지 약 1000명 이상의 신들의 계보도를 만들어서 아덴 시민들이 그 만들어진 가짜 신들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아덴 시민들은 그 신들을 진짜로 믿고 그 신들처럼 불사의 부활의 몸이 되기 위해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헤시오도스/ 천병희 옮김, 『신들의 계보』 (고양: 숲출판사, 2009), 244-270.).          
바울은 헤시오도스 시인이 있지도 않은 가짜 신들을 만들어서 아덴 시민들을 우상숭배자로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 오늘 본문 16절의 표현에 의하면 ‘격분’했다고 했습니다. 신같이 불사의 몸으로 부활하고 싶은 선량한 시민들의 순수한 마음을 미혹해서 가능하지도 않은 우상을 숭배하도록 한 것에 대해 격분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에게 신화에 나오는 가짜 신들의 부활이 아니라 실제로 역사에 나타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던 거입니다.  

바울은 원래 유대교인으로서 예수님이 부활을 했다고 믿는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4절과 8절에서 “[예수께서] 성경대로 사흘만에 살아나사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을 거짓말로 생각하고 그들을 잡으러 다니다가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리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전도자로 변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읽겠습니다. 바울은 아덴에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과는 완전히 반대의 입장을 보인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다시 쟁론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래도 신같이 불사의 몸으로 부활을 하기 위해 우상이라도 섬기려던 나름대로 순수한 사람들이었다면, 에피쿠로스나 스토아 철학자들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교만 때문에 아예 그런 불사의 부활의 몸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두 철학자들은 보이는 세상에 물질에만 관심을 보이는 유물론자들입니다.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은 쾌락과 육제적이며 정신적으로 건강하게만 살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었고, 스토아 철학자들은 도덕적으로 잘 살면서 금욕적으로 살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두 철학자들은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물질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내세에 부활의 몸을 얻는 다는 것에는 아예 관심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들 역시 역사에 실제로 나타나서 사시다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같은 분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세상 철학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18절 마지막에 예수와 부활을 전했습니다. 

당시에 부활이라는 주제는 가장 중요한 주제였지만 아무도 실제로 부활을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덴에서 우상을 숭배한 사람도 역사에서 실제로 부활한 사람의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차선책으로 우상에 빠진 것이고, 에피쿠로스나 스토아의 철학자들도 실제로 역사속에서 부활한 사람을 본적이 없기 때문에 이들도 차선책으로 이 세상속에 물질에 빠져 불사하는 부활의 몸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역사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이 두 유형과 유사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불사의 부활의 몸을 얻기 위해 막연한 우상 종교에 빠지든지, 아니면 아예 불사의 부활의 몸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이 이 세상의 물질주의에 빠져 이 세상에서 물질만을 즐기며 사는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기만 한다면 모든 사상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것입니다. 그게 바울이고, 오늘 여러분과 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몸과 잠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소생의 몸과는 다릅니다. 나사로같이 죽었다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난 소생의 경우는 다시 죽게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같이 부활한 몸은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새로운 영적인 몸으로 변화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 “죽은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42절)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다시 죽지 않는 불사의 영적인 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에게 다시 영원한 새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서 영생할 수 있도록 새로운 영의 몸을 주신 것이 바로 부활의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1-22절에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아담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인류에게 사망이 온 것처럼 부활도 예수님한 사람으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자는 예수님같이 부활을 합니다. 여러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여러분도 부활하게 됩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치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죽고 싶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어합니다. 그만큼 생명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다만, 다시 사는 길을 못 찾아서 어쩔수 없이 죽고 싶지 않아도 죽을 뿐이지 만약 다시 사는 길, 그것도 영원히 죽지 않는 길을 찾기만 한다면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길이 바로 부활의 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부활의 축복을 함께 받게되는 것입니다.  

오늘 부활주일에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고, 여러분도 영원한 부활의 축복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같이 
부활의 축복을 
받고 영생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회수 : 58 , 추천 : 0 , 작성일 : 2023-04-09 , IP : 1.224.21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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