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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마태복음 7:3-5/2023.4.30)

작성자

유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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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2023.4.30.
주일오전

마태복음 7:3-5

16세기 조선의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은 조선를 대표하는 대학자입니다. 이황은 자기를 성찰한다는 뜻을 담은 『자성록』이라는 서간집을 남겼습니다. 이황은 『자성록』에서 자기보다 26살 아래인 제자 기명언(奇明彦/기대승(奇大升, 1527-1572)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저의 비루한 소견을 서술하여 질문하신 뜻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 잘 생각해 보았더니 나의 비루한 이론 가운데는 한두 군데 타당하지 못한 곳이 있었기에, 고치고자 하였지만 미처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훌륭한 스승과 끗꿋한 친구가 나날이 격려해 주는 일도 없이 다만 흩어지고 해진 책조각 속에 달라붙을 줄만 알게 되었으니, 마치 대통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조개껍질로 바다를 헤아리는 것과 같아서 얻은 것은 온전하지 못하며, 겨우 한푼이나 한 치 정도로 쌓아 놓는 것도 손을 흔들면 그대로 흩어져 버리기만 합니다. (...) 비록 그대의 충고와 선도의 지극함을 입게 되었는데도, 오히려 텅빈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와 가슴이 감응하는 실질이 없을까 두려워하며, 또 지극하신 뜻의 만분의 일이라도 부합할 수 없을 까 염려합니다. 그런 도타우신 부탁이므로 조목별로 답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끝내 깨우쳐 주시기 바라겠습니다.”(이황/ 고산고정일 역해, 『자성록/언행록/성학십도』 (서울: 동서문화사, 2008(2판), 108-110.).

이황은 당대 최고의 학자이지만 제자를 가르치려고만 하지 않고 오히려 제자에게 자기에게 틀린 것이 있으면 가르침을 달라고 합니다. 이황의 답장에서 자기를 성찰하는 겸손함과 성숙한 품격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인격이 성숙하고, 교양이 있고, 품격을 갖추려고 하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무엘하 12장 13절에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고 했습니다. 왕인 다윗이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나단 선지자에게 자기가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다윗이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이 다윗을 버리지 않으시고 쓰셨던 것은 자기를 돌아보고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늘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 죄를 회개하는 사람은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되고, 영적으로도 성장하게 됩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죄를 회개하여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영적으로 성장하시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3절을 읽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티는 지푸라기나 왕겨를 말합니다. 들보는 건물를 바치는 기둥이나 써가래를 말합니다. 눈 속에 지푸라기나 기둥이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의 작은 잘못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가혹하게 비난 하면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먼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돌아보고 반성하라는 뜻입니다.     

제가 청년때 어느 선교단체에서 하는 수련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수련회 프로그램 중에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오더니 저는 형제를 미워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문도 모르고 용서합니다라고 말은 했지만 말하고 나니까 뒤끝이 남더라구요. 저 사람이 왜 나를 미워했을까 하면서 기분이 안좋더라구요, 차라리 형제의 간식을 뺐어 먹고 싶었습니다라고 하고 용서해 주세요라고 했다면 뒤끝은 안남을 것 같은데 미워했다고 하니까 기분이 안 좋더라구요. 그런 말은 혼자 자기를 반성하고 자기 선에서 회개하고 끝났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미워한 원인을 상대에게 전가하기 보다는 미워한 원인을 자기에게 돌리는 것이 좋습니다.         

늘 남의 잘못만 유난히 크게 보이는 사람은 자기의 잘못은 잘 안보일 수가 있습니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담의 타락후에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은 남의 약점이나 잘못을 지적하기를 좋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을 욕하는데는 빠르지만 자신을 돌아보는데는 느리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남의 흠을 말하는 습관에서 자신의 죄를 보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임하며 남의 죄를 지적하기 전에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세기 로마의 네로 황제 치하에서 활동했던 풍자 시인 페르시우스(A.D. 34-62)는 인간 특히 권력가들의 악덕을 고발했습니다. 권력가들이 악덕임을 알면서도 피하지 못하는 무력감 자체가 권력가들에게 형벌이라고 지적했습니다(아우구스티누스/ 성염 역주, 『교사론』 (왜관: 분도출판사, 2019(초판), 142, 각주 171.).     

오늘도 자신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남의 티만을 보려는 사람은 그런 행동 자체가 그 사람에게 형벌입니다. 그런 태도를 가지면 영원히 자신의 들보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들보를 가지고 사는 것이 형벌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을 읽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자여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교의 율법을 가지고 종교적 권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했던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율법을 조금만 어겨도 가차없이 정죄를 했습니다. 자신들의 죄는 생각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의 죄만 지적하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의 눈에 티를 보지 말고 자신들의 눈에 있는 들보부터 빼라고 하신 것입니다.

4세기 말과 5세기 초에 활동했던 중세 라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는 지금의 아프리카 알제리 사람입니다. 그는 당시 아프리카 히포에서 주교로 일하던 45세 때에 『고백록』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당시 히포에는 도나투스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의 바리새인들같이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같이 율법을 철저하게 믿는 않는자들을 정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을 썼습니다. 대개 주교와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자신의 책을 쓸때는 모두 자기를 자랑하는 위인전을 쓰는 것이 보통인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을 중심으로 썼습니다. 도둑질을 한 것, 동거녀를 통해 사생아를 낳은 것, 이단에 빠졌던 것, 성공하기 위해 지적 탐욕을 부렸던 것 등등 온통 『고백록』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피터 브라운/ 차종순 옮김, 『어거스틴 생애와 사상』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2), 225-260.).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를 자랑하거나 남의 죄를 보기 보다는 먼저 자신의 죄를 보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고백록은 기독교 역사에 최고의 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남의 눈에 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눈에 들보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이 성숙해 간다는 것은 남의 작은 죄를 지적하던 습관에서 자신의 죄에 심각성을 먼저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먼저 여러분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5절 후반부에 보면 먼저 자기 눈에 들보를 뺀 다음에 남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했습니다. 자기 눈에 들보는 빼지도 않고 남의 눈에 티를 빼려고 하면 안만해도 빼지지가 않습니다. 먼저 내 눈속에 들보를 뺀 다음에 남의 눈에 티를 뺄 수 있는 것입니다. 성숙하지 않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에서는 자기의 들보는 빼지 않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려고하면 절대로 빼지 못합니다. 모든 것은 자신의 들보부터 빼야 합니다. 그래서 5절에 ’먼저‘ 자기 눈에서 들보를 빼야 한다고 ’먼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부터 먼저 들보를 빼지 않으면 남의 눈 속에 티는 빠지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나의 들보부터 먼저 빼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영성훈련 중에 하나가 영성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영성일기는 특히, 내 눈에서 들보를 빼는 개인의 죄를 고백하는 훈련입니다. 개신교 영성일기의 대표적인 사람은 18세기 미국 인디안 선교를 했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1718-1747)입니다. 그는 20대 초반 예일 대학을 다니던 우수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학교를 다니면서 교수님들이 은혜가 없는 가짜 교수라고 비난을 하다가 그만 퇴학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그는 방황을 하다가 인디안 선교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선교를 하면서 자신이 교수들의 티를 본 것이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자신의 들보를 보기 시작하면서 회개를 하면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퇴학을 당하고 선교를 준비하면서 쓴 일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불현듯 내가 얼마나 추악한지를 깨닫자 깊은 낙담에 빠졌다. 극도로 추한 나를 깨끗이 씻어 달라고, 회심과 죄사함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점차 기도속에서 감미로운 기쁨을 맛보기 시작했다. 그리스도를 위해 깊은 고난을 당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마음이 샘솟았다.”(1742년 4월 6일 화요일)(조나단 에드워즈 편집/ 송용자 옮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 (서울: 복있는 사람, 2008(초판), 102.).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입니다. 그가 퇴학이후 인디안 선교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예일대 교수의 죄의 티를 보던 자리에서 자기의 들보를 보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가 교수의 티만 평생 보았다면 원망하며 일생을 망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브레이너드는 자기의 들보를 보고 회개하면서 모든 것이 해결되면서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마음껏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내 눈에 들보를 빼는 회개를 할 때 마음이 시원하고, 기쁨이 넘치는 경험을 합니다. 내 안에 들보를 보고 회개하고 그 들보를 내 눈에서 빼낼 때 가장 시원하고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먼저 여러분의 눈에서 들보를 빼서 시원하고, 기쁨이 넘치는 인생을 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이
남의 눈에 티를 보기 
전에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
시원하고 기쁜 인생을
살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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