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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페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35/2023.5.14)

작성자

유은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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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페로 사랑하라
2023.5.14.
주일오전

요한복음 13:34-35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Platon, BC 427-347)은 『향연』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향연』은 ‘에로스’ 사랑에 대해서 논한 책입니다. 『향연』에서 소크라테스가 애로스 사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아직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과 현재 [자신에게] 있지 않은 것을 욕구하거니와,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것과 부족한 것, 이런 것들은 [에로스] 사랑의 대상이다. (...) 에로스 [사랑]은 현재 자신에게 부족한 것, 그리고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찾는 사랑이다.”(플라톤/ 박종현 역주, 『향연 · 파이드로스 · 리시스』 (경기도: 서광사, 2016), 127.).
       
애로스 사랑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 갖고 있지 않는 것을 찾는 사랑입니다. 다시말해 애로스 사랑은 자신에게 결여된 것을 채우려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애로스 사랑은 궁극적으로 자기 중심적인 자기를 위한 사랑입니다. 아담의 타락후에 인간의 본성에는 자신의 부족과 결여를 채우려는 애로스 사랑만 남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은 결국 이 세상에서 자기의  결여를 채우려는 이기적인 애로스의 사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애로스의 사랑으로는 상대가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보다는 사랑을 빼앗긴다는 느낌만 가질 뿐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이런 애로스의 사랑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개인도 부부도, 자녀도 부모도 가정도 이웃도 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충분한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을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아가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1서 4장 16절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하나님은 아가페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는 애로스 사랑은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모두 아가페 사랑만 나옵니다. 애로스의 사랑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사랑이라면 아가페의 사랑은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입니다. 인간은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서 나오는 애로스 사랑으로는 충분히 남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가페의 사랑을 받을 때 우리는 개인이나 부부나, 자녀나, 부모나, 가족이나 이웃을 충분히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아가페의 사랑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34절을 읽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모든 사랑은 다 아가페입니다. 서로 사랑을 하되 그 사랑이 자기의 결여를 채우려는 애로스의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다시말해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이기적인 사랑을 하지 말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한 것 같이 하나님이 주시는 아가페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처음에 교육전도사로 간 교회는 망원동에 있는 망원제일교회입니다. 제가 교회에 처음 갔을 때 장로님이 저에게 식사를 사 주시면서 망원제일교회의 역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망원제일교회를 개척하신 이상양 전도사님은 열심히 일하시다가 병이 걸렸는데 한복을 입고 링거병을 속에 가지고 다니실 정도로 성도들을 사랑으로 목회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시다가 병이 악화되어 35살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오신 목사님은 교인들이 아플때마다 늘 헌혈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분들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신앙이 자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담임목사도 아닌 교육전도사인 저에게 제가 이렇게 말하면 안되지만 교역자가 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교역자가 피를 흘리면서 일해 주기를 저희들은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 제가 사랑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그 말을 듣고 부담이 돼서 밥이 넘어가지가 안터라구요. 저는 그 교회에서 피까지는 못 흘리고 땀은 조금 흘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아가페의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낌없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아가페의 사랑을 받아야 우리도 희생적이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가 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1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내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속하기 위해 화목제물로 희생하신 그 희생의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의 아가페 사랑을 받을 때 비로소 우리도 다른 사람을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아가페의 사랑이 넘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중세 라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십자가에 달려서도 걸어가신 길, 바로 이 사랑의 길입니다. (...) 누군가가 형제들을 위해 죽을 준비까지 갖춘 사랑을 지녔다면, 이 사람 안에 완전한 사랑이 있습니다. (...) 그대, 원하는 것 다 가지십시오. 그러나 이 [사랑] 하나를 지니지 못한다면, 그대에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여러분이] 이 광야에서 목말라 죽지 않으려거든 사랑을 마시십시오. 사랑이란 우리가 길에서 지쳐 쓰러질세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마련하신 샘입니다.”(아우구스티누스/ 최익철 옮김, 이연학, 최원오 해제 역주, 『요한 서간 강해』 (왜관: 분도출판사, 2011(초판), 89, 235, 243, 309.).  

우리가 예수님이 주시는 십자가의 아가페의 사랑을 받을 때 우리는 그 사랑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요한1서 4장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내 결핍 때문에 하는 애로스의 사랑을 가지고는 이웃은 고사하고 심지어 내가 낳은 자식마저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 애로스의 사랑으로는 부부간에도, 부모를 사랑하는 것에도 한계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주시는 십자가의 아가페의 사랑을 받을 때만이 부부도 자식도 부모도 가족도 이웃도 희생적으로 충분히 사랑하게 됩니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가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아가페의 사랑을 충만하게 채워주시기를 축원합니다.       

100여년전 한국에 처음 복음이 전해지던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지금 한센병이라는 말하는 문둥병 환자, 나병환자가 여기 저기 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나병은 불치의 병이라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라도 광주에 이 나병환자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며 그들을 돌보고 사랑한 최층종 목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나병환자들을 위한 병원과 마을을 만들고 그들을 보호하고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전라도 광주에서는 최흥종 목사를 나병환자들의 아버지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이 최흥종 목사가 처음부터 나병환자를 사랑했던 사람은 아닙니다. 그가 나병환자를 사랑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어느날 외국 선교사 포사이트 선교사의 길을 안내해 주고 있을 때 였습니다. 포사이트 선교사 앞에 코와 귀, 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을 더러운 누더기로 가린 거렁뱅이 나병환자 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거렁뱅이 나병환자는 포사이트 선교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포사이트 선교사가 나귀에서 내려서 그 여자 앞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피고름이 엉켜붙은 누더기에 친친 감긴 나병환자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털외투를 나병환자에게 입혀 주었습니다. 당시에 나병환자들이 여기저기 있는 상황이었고 최흥종은 이런 경우 침을 뱁거나 돌멩이를 던지고 모래를 뿌렸던 사람으로서 포사이트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포사이트는 자기가 타던 나귀에 그 여자를 테우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다 여자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나귀에서 떨어졌습니다. 포사이트 선교사는 최흥종에게 그 지팡이를 주어달라고 했습니다. 최흥종은 지팡이를 주어주다가 자기도 나병에 걸리면 어떻하나 걱정이 되어 한동안 주어주지 못했습니다. 광주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구경을 나와서 포사이트 선교사가 미쳤다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최흥종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뜨겁게 가슴을 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이 사건이 최흥종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포사이트 선교사가 나병환자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자 최흥종도 변화되어 이제 나병환자를 멸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병환자를 자기의 몸처럼 사랑하는 아가페의 사랑을 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문순태, 『성자의 지팡이』 (서울: 다지리, 2000), 106-114.).  
              
오늘 본문 35절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애로스의 사랑은 상대를 위한 사랑이 아니고 결국은 자신을 위한 사랑이기 때문에 잠시 사랑의 효과가 있는 것 같지만 곧 시들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이 변화되고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나도, 부부도, 자녀도, 부모도, 가족도, 이웃도, 애로스의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의 사랑을 해 주어야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지난주 어버이 날에 우리 아이가 화분에 담긴 카네이션을 하나 사왔습니다. 그런데 몇일 지나니까 카네이션과 그 옆에 풀들이 시들시들하면서 죽어갔습니다. 왜 그런가 봤더니 화분속에 흙이 있는 것이 아니라 큰 스치로폰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가 가게에 가서 흙을 사와서 화분을 채워넣었더니 카네이션과 풀들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애로스의 사랑으로는 사람에게 잠시는 살아나게 하는 것 같지만 곧 시들어 버립니다. 아가페의 사랑을 받아야 나도 살고, 부부도 살고, 자녀도 살고, 부모도 살고, 가족도 살고, 이웃도 살고, 모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이 주시는 아가페의 사랑이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아가페의
사랑을 주셔서
우리 성도들이
아가페의 사랑을 받고
변화되고, 새롭게 살아나게 하시며 
그 아가페의 사랑으로
다름 모든 사람을 사랑하여
다른 사람들도
변화되고
새롭게 살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회수 : 35 , 추천 : 0 , 작성일 : 2023-05-14 , IP : 1.224.21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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