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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눅24:1-12/2018.4.1)

작성자

유은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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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2018.4.1.
주일오전

누가복음 24:1-12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보면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미이라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쇠갈고리로 콧구멍을 통해 뇌를 꺼내고, 예리한 칼로 옆구리를 절개하고 내장을 모두 제거한 후 배 안을 세척하고 으깬 몰약과 계피와 다른 향료로 시신의 배에 가득채우고 봉합합니다. 그런 다음 시신을 양잿물에 70일 동안 담가둡니다. 70일이 지나면 고운 아마포로 만든 붕대로 전신을 싸고 그 위에 고무를 바릅니다. 그리고 목관에 안치합니다.(헤로도토스/ 천병희 옮김. 『역사』 (고양: 숲출판사, 2009), 210). 

이집트 사람들이 미이라를 만든 목적은 죽은 시신의 몸을 최대한 썩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왕은 엄청나게 큰 피라미드 무덤을 만들어 놓고 미이라로 만들어 피라미드에 안치합니다. 최대한 몸이 안썩게 보관하다가 다시 살아날 것을 기대했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하고, 죽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을 살다가 모두 죽게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땅의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3장 19절에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몸은 죽어서 썩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몸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시한부 인생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썩어가는 몸을 하루라도 즐겁게 하기위해 먹고 마시며, 몸을 즐겁게 하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인생을 부분만 알지 하나님이 정해주신 인생 전체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는 흙으로 만든 몸은 썩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후에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몸을 입은 사람들은 부활하여 영생을 누린다고 말씀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 “육의 몸을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육의 몸은 썩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몸은 영원히 썩지 않고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몬 2절에 보시면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여자들이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갔습니다. 향품을 가지고 갔다는 것은 미이라를 만들기 위한 향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수님의 몸이 조금이라도 천천히 썩었으면 하는 마음과 악취를 감추기 위해 향품을 몸에 바르기 위해서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도착했을 때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옮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서 무덤에 들어가 예수님의 시체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무덤안에 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근심했습니다.

옛날에 우리 큰 아이가 5살정도 됐을 때 어린이 대공원에 놀러 간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순간 아이를 잃어 버렸습니다. 막 찾아 다니다가 제 아내가 다행이 아이를 찾았습니다. 아내가 아이를 찾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안심이 되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여자들이 무덤에 계셔야 하는 예수님의 시체를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고 근심하고 있을 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서서 예수님이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6절에서 천사가 여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말씀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여자들은 갈릴리에서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지각 심리학 분야에서 쓰는 용어 가운데 ‘선택적 지각’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선택적 지각은 가장 흔히 범하는 지각적 오류로서 개인은 환경으로부터 모든 자극을 다 감지할 수 없으므로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수용하려는 경향입니다. 자신의 관심, 배경, 경험에 근간을 두고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선택적으로 해석하는 결과로 발생하는 오류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모든 것을 다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관심이 있는 것만 지각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도 갈릴리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들었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지작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천사가 말을 하니까 그때 비로소 기억이 나면서 믿어졌습니다. 12절에 여자들이 이 소식을 사도들에게 전했지만 사도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에서 예수님이 말씀 하신 것을 기억하고 달려갔습니다. 교회에서도 자기의 관심에 따라 설교를 듣기 때문에 당장 자기의 관심이 아니면 안들립니다. 그러나 설교를 잘 들어두시면 나중에 믿음이 생기고, 관심이 생기면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의 인생을 인도해 주십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사실을 기억하시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7장 26절에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 형벌은 먼저 심한 채찍질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당시 채찍의 끝에는 납이나 동물의 뼈 같은 것을 달아 놓았기 때문에 한번 맞으면 살 속에 박혀서 뼈가 들어날 정도였습니다. 고통이 극심해서 채찍에 맞다가 쇼크사로 죽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25절에 “때가 제 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기 위해서는 손목과 발목에 약 20센티의 대못을 박는데 이때 죄수의 몸무게로 인해 살이 찢어집니다. 손발의 신경이 다 끊어지는 그런 끝없는 육체적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몸이 늘어져 있어서 가슴근육이 당겨져 호흡도 제대로 할 수 없고 나중에는 산소부족으로 온몸 전체가 경련을 일으킵니다. 요한복음 19장 34절에는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6시간 동안 십자가위에서 옆구에서 흐르는 과다 출혈로 돌아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아 가실 때의 몸 상태는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최악의 몸 상태였기 때문에 설사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더라도 간신히 무덤안에서 눈만 뜨는 정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2절에 베드로가 무덤에 갔을 때는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만 보이더라’고 했습니다. 이 정도의 십자가 고통을 당한 예수님의 몸 상태라면 아무리 삼일정도 회복했다고하더라도 앉아 있기도 어려울 정도 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살아나셔서 걸어서 무덤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몸은 십자가 지실 때의 육신의 몸으로 다시 사신 것이 아니라 신령한 영의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몸의 고통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영의 몸을 입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영생하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과 22절에서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아담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도 부활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첫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우리도 예수님같이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여러분도 부활하시기를 바랍니다.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그의 유명한 책『희망의 신학』에서 “그리스도교의 미래 희망은 단 한번 일어난 특정한 사건,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현현을 인식함으로써 생겨난다.”고 했습니다.(위르겐 몰트만,『희망의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214).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우리도 예수님같이 부활한다는 소망을 가질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는 부활하여 영생하는 천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고, 예수님같이 부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같이
부활하는 축복을
받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회수 : 56 , 추천 : 0 , 작성일 : 2018-04-01 , IP : 211.176.9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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