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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한복음 21:15-17/2019.3.24)

작성자

유은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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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2019.3.24.
주일오전

요한복음 21:15-17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보면 그리스의 최고의 장군 아킬레우스가 총 사령관 아가멤논과 갈등이 생겨 전쟁에 나가지 않자 그리스연합군이 궁지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몰래 나가 싸우다가 전사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죽음 때문에 우정을 생각하여 지금까지 아가멤논과의 갈등을 다 잊어버리고 전쟁에 나가기로 결심합니다. 전쟁에 나가 승리하고 돌아온 아켈레우스가 이런 말을 합니다. “친애하는 전우들이여! 자, 우리가 말들을 전차에서 아직 풀지 말고 말들과 전차들과 함께 파트로클로스 곁으로 가서 애도합시다. 실컷 울고 마음이 가벼워지거든 그때 가서 모두 말들을 풀고 여기서 저녁을 먹읍시다. 이렇게 말하고 아킬레우스가 먼저 시작하자 그들도 일제히 따라서 호곡했다...모래도 눈물에 젓고 전사들의 무구들도 눈물에 젖었다.”(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 (경기도: 숲출판사, 2015(제2판/개정판), 643). 

호메로스는 독자들에게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정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우정을 중요한 삶의 덕목으로 생각했습니다. 성경에도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우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비록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갔지만 함께 신앙을 지키는 믿음의 우정을 가지면서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특히, 교회의 성도가 된다는 것은 교회에서 좋은 믿음의 우정을 나누는 친구를 만난다는 뜻입니다.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여러분 모두 세상의 우정을 넘어서는 믿음의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를 만나 우정을 나누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보내는 동안 외롭지 않았던 것은 제자들과 친구의 우정의 관계를 맸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 15절에 제자들을 향해 “이제부터는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친구사이니까 아버지께 들은 것을 서로 나누는 친구 사이가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친구를 하자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친구로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비밀을 예수님께 다 말하고 예수님과 우정의 관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좋은 우정의 관계를 맺으면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아주 좋은 예수님의 친구들을 여러분에게 소개 시켜 주실 것입니다. 
 
20세기 한국의 역사가이며, 사상가였던 함석헌 선생(1901~1989)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 의 내용입니다.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不義)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정주 오산학교에서 기독교 정신을 배운 함석헌 선생이 말하는 ‘그 사람’은 단순한 세상적인 친구의 우정을 넘어서는 이상적인 사랑, 성경이 말하는 아가페의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사랑을 말한 듯 합니다.  

오늘 본문 15절에서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예수님 말하는 ‘사랑’과 베드로가 대답하는 ‘사랑’이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어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 하신 사랑은 아가페라는 단어입니다. 이에 비해, 베드로가 말한 사랑은 필레오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헬라의 문화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었었기 때문에 베드로가 말한 필레오라는 말은 헬라 사람들이 보통 친구간의 우정을 말할 때 쓰는 말을 예수님께 한 것입니다. 아가페는 자기를 희생하고 아낌 없이 헌신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제 베드로가 지금까지는 필레오로 우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필레오를 넘어 보다 더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아가페로 사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서방라틴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의 유명한 책 『고백록』에서 우정 때문에 친구와 몰려 다니며 죄를 짓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세상적인 우정의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 참으로 원수 같은 우정이여! 납득할 수 없는 지성의 기만이여! 놀이삼아 남을 해칠 탐심이 생기고, 저로서는 아무런 이득이 없는 데도 남의 손해를 도모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누구한테 앙갚음할 작심이 전혀 없음에도 [우정 때문에] ‘가자. 헤치우자.’하는 한마디에 파렴치하지 못하다고 되레 부끄러워하나니!”(아우구스티누스/ 성염 역주, 『고백록』 (경기도: 경세원, 2016(초판), 104).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상적인 우정은 결국 불완전하며, 죄를 짓는 쪽으로 빠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가룟 유다는 처음에는 예수님과 우정의 관계를 잘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기대와 틀어지고, 돈에 욕심을 가진 가룟 유다는 결국 예수님을 팔아 버렸습니다. 세상의 우정은 자기와 의견이 안맞는다든지, 돈 문제가 결부되면 우정의 관계는 하루 아침에 깨어집니다. 나머지 제자들도 삼년간 예수님과 우정의 관계를 가졌지만 예수님이 잡히고 십자가를 지는 고난을 당할 때 모두 도망가 버렸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단순히 도망 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도망갔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우정, 필레오의 사랑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의 친구간의 우정, 필레오를 가지고는 안되고, 필레오를 넘어서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기를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에서 다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아가페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다시 필레오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필레오의 우정의 사랑을 넘어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라고 다시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우리들에게 아가페의 사랑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경은 온통 아가페의 사랑을 말씀합니다. 마가복음 12장 30~31절에 율법을 두 가질 요약을 하시면서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실 때 아가페를 쓰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여기서도 아가페를 쓰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 예수께서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할 때도 아가페를 쓰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하실 때도 아가페의 사랑를 쓰고 있습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아낌 없이 자신을 주고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인생은 아가페의 사랑으로 살아가야 행복한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도 예수님을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소통전문가 김창옥 교수가 자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 내용입니다. 이분은 제주도가 고향인데 제주도에 여든이 다되신 아버지가 계시다고 합니다. 청각장애인인 아버지는 서울에서 전화를 하면 언제나 세 마디를 하신다고 합니다. 밥먹고, 차조심하고, 전화세나온다 끊자 하시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신다고 합니다. 어느날도 전화를 드렸더니 또 똑같은 말을 하시더랍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아버지의 말씀이 이렇게 해석이 되더랍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실때는 밥먹으라는 말을 하시는구나, 전화세 많이 나온다 전화 끊자하고 끊으실 때는 너 바쁘지만 시간내서 집에 한번 왔다가라로 들리더랍니다.

때로는 말을 반대로 들어야 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마지막으로 세 번 째 이제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아가페로 사랑하느냐고 묻지 않으시고, 필레오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여전이 세 번째도 필레오로 사랑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는 이전에 이미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기 때문에 아가페로 헌신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알고 마지막 세 번째에는 베드로에게 필레오로 물으시고 베드로도 필레오로 대답했습니다. 비록 베드로가 세 번 모두 필레오의 겉으로는 필레오의 우정의 사랑으로 대답했지만 속 마음은 아가페로 사랑하겠다고 대답한 것을 예수님이 아시고 필레오로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수님의 필레오도 아가페요, 베드로의 필레오도 아가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합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여기에 양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아가페의 사랑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신 아가페의 사랑, 십자가위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아가페의 사랑을 모르고 사랑에 굶주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모든 사람은 아가페의 사랑을 받아야 살아나고 행복한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아가페로 사랑하시고, 예수님의 아가페의 사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아가페의 사랑으로 여러분의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을 아가페로 
사랑하여 예수님의 
아가페의 사랑을 받아
이웃의 사람들을 아가페로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회수 : 73 , 추천 : 0 , 작성일 : 2019-03-24 , IP : 211.176.9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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