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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마태복음 28:1-10/2022.4.17)

작성자

유은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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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
2022.4.17.
주일오전

마태복음 28:1-10

기원전 2세기 그리스 아테네 출신의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 180-120 BC)는 『그리스 신화』 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 헤라클레스 이야기가 나옵니다. 힘이 센 헤라클레스는 도시를 점령하고 이올레라는 여자를 포로로 잡아 왔습니다. 헤라클레스는 제단을 세우고 제우스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고운 옷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헤라클레스의 부인은 헤라클레스가 포로로 잡아 온 이올레를 자기 보다 더 사랑할까 두려워서 [헤라클레스에게 잘 보이려고] 휘드라가 만들어 놓은 독약을 미약으로 잘 못 알고 그 웃옷에 칠했습니다. 헤라클레스가 그 옷을 입고 제사를 드리다가 그만 그 독이 살 속으로 파고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몸에 달라붙은 상의를 찢으려 하자 그의 살이 함께 떨어져 나갔습니다. 헤라클레스는 너무 괴로워서 장작더미에 올라 불을 지르라고 했습니다. 아폴로도로스는 그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장작더미가 타는 동안 한 조각 구름이 헤라클레스 밑을 지나가며 천둥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그를 하늘로 들어올렸다고 한다. 그 뒤로 그는 불사의 몸이 되었다.”(아폴로도로스/ 천병희 옮김,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고양: 도서출판 숲, 2004), 173-174).     

헤라클레스는 장작더미에서 죽었지만 그때 천둥 소리가 울리면서 하늘로 들려 올라 가서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헤라클레스가 부활한 것입니다. 신화는 현실이 아니고 꾸며낸 이야기이기 때문에 헤라클레스가 부활했다고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부활을 꾸며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부활이 현실의 세계에서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4-8절에서 “[예수님은]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베드로(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나 [바울]에게도 보이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꾸면 낸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진리가 부활입니다. 부활은 글로 쓴 교리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곧바로 밝혀집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가짜였다면 아마도 얼마가지 않아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아서 즉시 가짜로 드러났을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이 진짜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목격자들이 나타나면서 진짜로 믿어졌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우리에게까지 전해 온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5-6절을 읽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이 되던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찾아갔을 때 주의 천사가 무덤의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아서 여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신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1920년대 한국교회의 부흥사였던 김익두 목사님이 강원도 춘천에서 부흥회를 할 때입니다. 당시 일본 순사들이 긴 칼을 허리에 차고 부흥회를 하는 교회에 들어와 담임 목사님이 신사참배를 안했다고 잡으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때 김익두 목사님이 “사탄아 물러가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소리가 나기를 목사님을 끌고 가던 두 순사들이 땅에 쓰러져 죽었다고 했습니다. 경찰서에서 사람이 와서 김익두 목사님이 죽은 두 순사를 살려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경찰서에 가서 보니까 흰 보자기로 두 순사의 시체를 덮어 두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노니 생명이 들어오고 일어나라”고 외치자 두 순사가 눈을 트고, 주위를 돌아보며 웃었습니다(이태선, 『초기 한국교회 불의 사자 김익두 목사』 (서울: 보이스사, 1993), 152-155). 
         
이런 경우는 생명이 끊어졌다가 다시 살아난는 소생한 경우입니다. 두 순사는 이렇게 살아났다고 해도 세월이 지나면 다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은 부활이 아니고 소생입니다. 소생과 부활은 다른 것입니다. 혹시 죽음에서 소생했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은 소생하신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몸은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는 것이 부활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한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면서 예수님의 몸은 다시는 죽지 않는 영의 몸으로 변화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육체가 다시 죽는 소생한 것이 아니라 다시는 죽음을 당하지 않는 부활을 하신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대 라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AD 354-430)는 그가 쓴 『신국론』 22권에서 부활한 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같이] 육체로부터 새로운 영적인 몸으로 변하여 썩지 않음과 불사불멸을 입고서 부활할 것이다. 설혹 어떤 중대한 사고를 당해서 혹은 원수들의 잔악함으로 인해 몸 전체가 거의 먼지로 바스러지거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만큼 철저히 대기나 물로 분산되어 버렸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창조주의 전능에서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하고 거기서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몸은 영에 복속할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몸이지 영은 아니다.”(아우구스티누스/ 성 염 역주, 『신국론 19-22권』 (왜관: 분도출판사, 2004), 2663).  

아우구스티누스는 부활하여 영적인 몸으로 변화되면 다시는 사망을 당하여 썩지 않는 영의 몸으로 변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몸이 단순히 영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영의 몸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39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말씀 하시기를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영으로 변하여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의 몸으로 변하셨기 때문에 눈에 보이고 만져지지만 육체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으로 변화되셨기 때문에 이제 다시는 썩지 않고, 다시는 사망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9절을 읽겠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듣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달려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 여자들에게 나타나 평안하냐고 물으셨습니다. 여자들은 나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 여자들이 길에서 예수님을 알아본 것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은 영의 부활이 아니라 몸이 영의 몸이 된 것이기 때문에 눈으로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자들이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한 것을 보면 예수님의 영의 몸이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영의 부활이었다면 아무도 예수님의 부활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말하는 영혼불멸 사상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영혼이 죽어서 불멸한다고 말했지만 그들이 말한 불멸한 영혼의 실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의 부활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의 몸으로 변화된 부활이었기 때문에 초대교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확신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종교개혁자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은 『기독교 강요』 2권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제거되었으며,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의가 다시 살아났으며 회복되었다. (...)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죄가 소멸되고 죽음이 사라졌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의가 회복되었고, 생명이 세워졌다.”(존 칼빈/ 문병호 옮김, 『기독교 강요 2』 (서울: 생명의말씀사, 2020(초판), 483).    

칼뱅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가 소명되고 죽음이 사라졌으며,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의가 회복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1-22절에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온 인류에게 미쳤지만 이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부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10절을 읽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자들에게 가서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사역을 시작하셨던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보여 주시면서 이제 본격적인 복음 사역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인간의 가장 절망적인 문제는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부활의 소식이 인간에게 가장 기쁜 복음의 소식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부활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자들은 예수님같이 부활할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여러분들도 예수님같이 부활의 축복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같이
모두 부활의
축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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