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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요한복음 8:31-36/2022.5.8)

작성자

유은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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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2022.5.8.
주일오전

요한복음 8:31-36

1837년에 출판 된 독일의 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역사철학강의』에서 헤겔은 중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중국은 절대평등의 나라이고, 그곳에 있는 구별은 모두 저마다 행정직의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고 애를 쓰는, 위계에 바탕을 둔 행정상의 구별이다. (...) [그러나] 이 평등은 투쟁을 통해 내면적인 인간 가치를 인정시킨 것이 아니라, 구별이 생겨나기 이전의 낮은 차원의 자기감정이다. (...) 중국에는 평등은 있어도 자유는 없기 때문에 정치형태는 [지배자가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아무런 제한이나 구속 없이 마음대로 그 권력을 운용하는] 전제정치가 될 수 밖에 없다.”(G.W.F 헤겔/ 권기철 옮김, 『역사철학강의』 (서울: 동서문화사, 2016(1판), 129, 141). 

인간의 삶에 평등이 중요하지만 자유가 빠진 평등은 자발적인 평등이 아니라 강제적 평등이 될 수 있습니다. 지배자 밑에서 평등하다고 해도 자유를 빼앗긴다면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긴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에게 자유가 중요합니다. 인간은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자유가 있어야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자유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롭게 세상에서 생육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며 살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인간은 자기 자신을 억압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자유를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자유를 주시 않고, 자기를 너무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에게 자유를 주면서 살아야 행복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유를 가지고 살 때 나도 행복하고 가정과 사회가 모두 행복한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자유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31-32절을 읽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려고 예수님 앞에 왔지만 아직 예수님의 말씀과 진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아직까지도 유대교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다시말해 그들은 유대교의 율법종교에 영향을 받아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자유에 대해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때만해도 모든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다닌 때였습니다. 지금도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다니기는 하지만 지금같이 색깔이나 디자인이 세련된 교복이 아니라 검은색 교복에 검은 모자 여학생들도 흰색 옷과 검은 색 치마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남학생들은 여기에 학교에서 군사훈련을 할 때 입는 교련복도 입고 다녔습니다. 학생들은 학교 갈 때는 물론이고 다른 곳을 갈 때도 거의 교복을 입고 다녔습니다. 사복을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주일에 교회를 올 때도 거의 다 교복을 입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다니던 교회가 서울에서 최초로 맨션 아파트가 세워진 곳이라 잘 사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교회를 올 때 멋진 사복을 차려입고 교회를 오곤 했습니다. 남학생들의 경우 교복 대신 교련복은 허용했지만 사복을 입고 오는 것에 대해 모두가 잘 못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생회 임원회를 열어 교회 올 때 사복을 입고 오지 않도록 광고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됩니다. 아마도 사회적으로 자유가 제한되었던 시대이기도 하고 당시의 교회가 너무 율법적인 신앙을 강조했기 때문에 심지어 옷 입는 것까지 신앙인들의 자유를 제한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너무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한다고 보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율이 있었는데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시기도 하고, 안식일에 제자들이 밑맡 사이로 지나가면서 이삭을 잘라서 먹자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한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율법보다 자유를 강조했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이 노예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저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점은 개인이 자유를 가지고 하는 신앙생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그 성도가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로 신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성도들에게 신앙을 강요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그 믿음이 강요된 형식적인 믿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자발적인 믿음이 안될 수 도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신앙을 가지려고 할 때 자유를 가지고 스스로 신앙을 선택해야 결국에는 참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자유를 주셔서 그 자유를 가지고 스스로 자발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867년 영국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에이미 카마이클이라는 여자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훗날 일본과 인도에 선교사로 가게 됩니다. 에이미는 아일랜드 장로교 출신이었습니다. 아일랜드 장로교 여자 성도들은 모자나 구두를 갖추지 않고는 교회에 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에이미가 일본에 도착했을 때 선교지에서 교회에 나가게 됐을 때 그녀는 난생처음 모자나 구두를 갖추지 않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양 있는 집안 출신의 조신한 빅토리아 조(朝) 처녀에게 이런 복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의자도 아니라 바닥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그것은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에서 자유했습니다.] 나중에는 중국의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사람같이 머리를 땋고 중국 복장을 입었듯이 에이미도 일본 옷 키모노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을 수놓아서 입고 다니며 선교했습니다(엘리자베스 엘리엇/ 윤종석 옮김, 『에이미 카마이클』 (서울: 복있는 사람, 2004), 72, 89, 101-102).        

에이미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본질이고 나머지는 비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서 자유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비본질적인 것에서 자유해야 합니다.   

제가 처음 교육전도사때 담임 목사님이 예배 늦게 오는 성도들은 예배실 문을 잠그고 들여 보내지 말라고 해서 제가 그 당시 지나친 원칙주의자라 정말 예배실 문을 잠그고 성도들을 안 들여 보냈다가 나중에 혼났습니다. 비본질적인 것에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아마 제가 지금 성도들에게 자유롭게 하는 것은 그때의 교훈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저는 성도가 교회에 오시기만 한다면 감사하게 생각해서 모든 것을 성도의 자유에 맡기는 것이 예수님의 자유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33절과 34절을 읽겠습니다. 유대인들이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겉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종교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한 자유는 죄의 종으로부터 자유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죄의 종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17세기 영국의 개혁주의 신학자 존 오왠은 그의 책 『죄 죽임』 이라는 책에서 죄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몸은 본성의 자리와 도구가 됨으로써 지체들을 불의의 종으로 만듭니다. 따라서 몸이 뜻하는 사실은 내재하는 죄 곧 부패한 육체 또는 탐심입니다. (...) 진실로 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철저하게 죽임을 당했는데, 그것은 우리 죄를 죽이기 위한 공로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존 오웬/ 귐귀탁 옮김, 『죄 죽임』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38, 40).    

인간이 몸을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은 죄의 종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6장 16절에서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죄의 종으로 살아가면 결국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망에 이릅니다. 죄의 종으로부터 유일하게 구원받고 자유할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죽이시고, 자유하신 그 자유를 우리에게 주실 때만이 우리는 죄의 종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5-36절을 일겠습니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한다는 것은 죄의 종이 된 사람은 죄로부터 자유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우리를 죄의 종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면 우리는 참으로 죄의 종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영원히 하나님의 집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22절에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인간의 노력으로는 죄의 종 상태에서 벗어날 수 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죄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실 때 죄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의 종으로부터 자유한 자는 영생을 얻게됩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예수님이 주시는 자유로 죄의 종으로부터 벗어나 영생을 얻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에게
자유를 주셔서
자유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고
죄의 종으로부터
자유하여
주님이 주시는 영생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회수 : 62 , 추천 : 3 , 작성일 : 2022-05-08 , IP : 1.224.21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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