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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고린도전서 13:4-7/2022.5.15)

작성자

유은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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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2022.5.15.
주일오전

고린도전서 13:4-7

16세기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라는 작품을 썼습니다. 이 작품은 로미오과 줄리엣이 서로 사랑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로미오가 줄리엣을 사랑하기 전에 로절린이라는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로미오의 마음이 바뀌어서 이제는 줄리엣을 사랑하게 되고 줄리엣과 결혼까지 하기 위해 로렌스 신부를 찾아가 주례를 부탁합니다. 그러자 로렌스 신부가 로미오를 꾸짖으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로절린은 잘 알고 있었거든, 네 사랑은 내용 없이 겉핥기로 외어 대듯 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그러자 로미오가 로렌스 신부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꾸짖지 마십시오. 이번에 제가 사랑하는 여자는 성의에는 성의로, 사랑에는 사랑으로 보답해 주는 여자입니다.”(셰익스피어/ 신상웅 옮김, 『햄릿/오델로/리어왕/멕베드/로미오와 줄리엣』 (서울: 동서문화사, 2016), 480- 481).    
아마도 추측건데 로미오가 로절린과 사랑을 할 때는 내용 없이 겉핥기로 외어 대듯 하는 무성의한 사랑을 한 것 같습니다. 로미오가 자기 중심적으로 하는 사랑을 로절린도 받아 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실패의 경험 때문이었는지 이번에는 로미오가 줄리엣에게는 성의를 가지고 대하자 상대방도 성의로 대해주고, 내용이 있는 사랑으로 대해주자 내용이 있는 사랑을 받은 것 같습니다. 로미오가 로절린과 사랑을 할 때는 자기 유익을 구하고, 자기 중심적인 욕망을 위한 사랑을 했다면, 줄리엣과 사랑을 할 때는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무례히 행하지 않는 성숙한 사랑을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할 수 있었다고 보입니다. 내 중심적으로 하는 사랑은 아직 사랑이 아니라 자기 유익을 위한 욕망입니다. 사랑은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할 때 그때 비로소 그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2장 31절에서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자기를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이 상대를 귀중하게 생각하고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시간의 여러분 모두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4절과 5절을 읽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진정한 사랑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고, 시기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래 참는다는 것은 상대를 배려해서 참아주는 것입니다. 온유한 것도 상대에게 화날 일이 있어도 상대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자랑하지 않는 것도 자랑하고 싶어도 상대를 배려해서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잘났다고 교만하면 상대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사에 다른 사람의 유익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특성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자기 중심적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특성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진정한 사랑을 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에 차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제 차를 대는 구역에 어떤 사람이 오토바이를 세워 두어서 오토바이를 치우지 않으면 차를 댈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 나와서 제가  오토바이를 옮기고 차를 댔습니다. 그리고 차 앞에 좁은 공간이 있어서 다시 오토바이를 그곳에 대놓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어느 할머니가 앉아서 종이박스를 줍는분이셨는데 제가 힘들게 옮기는 것을 보시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없으니 그냥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오토바이 주인이 나와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제가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데 그 할머니가 대뜸 저에게 “목사님이시죠” 하는 겁니다. 저는 제가 알지도 못한 분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놀랐습니다. 아마도 그 할머니는 동내를 돌아다니시면서 누군가에 저에 대해 들으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네”하고 대답을 하면서 집으로 들어가면서 속으로 큰 일 날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거기서 제가 오토바이 주인에게 화라도 냈다면 그 할머니가 “목사님이시죠“ 라는 말은 안하셨을 겁니다.     

오늘 본문 7절을 읽겠습니다. 사랑에 대한 특징을 4절에서 7절까지 말씀 하는데 4절 처음에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했고, 7절의 처음에도 “모든 것을 참으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7절의 맨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특징 중에 처음과 마지막에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참는 것입니다. 참을 때도 오래참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상대를 사랑하는지 보려면 얼마나 참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면 내 마음에 안들어도, 답답해도, 힘들어도 모든 것을 오래 참고 견뎌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참고 있다면 내가 상대는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참지 못하고 말하거나 기다려주지 않고 너무 급하게 행동한다면 아직 사랑하고 있지 않는 지도 모릅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는 진정한 사랑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서방 라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AD 354-430)는 그가 쓴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실상 성경은 사랑 외에 아무것도 명하지 않고 욕망(정) 외에 아무것도 단죄하지 않으며 그런 방식으로 인간들의 윤리를 다듬어 간다.”(아우구스티누스/ 성염 역주,  『그리스도교교양』 (왜관: 분도출판사, 2011), 281).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성경에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은 오직 사랑만을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사랑은 오늘 본문에 나온 것 같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례하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는 삶입니다. 반대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삶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이제 자기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욕망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495년 포루투칼에서 태어난 요한(본명 Juan Cidade, 1495-1550)이라는 사람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8살 때 집을 잃어버렸는 모르지만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요한은 마흔이 될 때까지 이 나라 저 나라르 떠돌아 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하며 자기의 유익을 위한 생활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을 믿게 되고 그동안 자기만을 위해 살았던 삶을 회개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당시 요한은 책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자기의 책을 다 팔고 가게를 다 팔아서 작은 집을 하나 얻어 병원을 열었습니다. 요한의 편지에 그 때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병원에 찾아오고 있습니다. 불구자, 중풍병자, 나환자, 귀머거리, 정신병자, 피부병 환자들이 들어와 있고 그 밖에도 갖가지 환자와 노인과 어린이들이 수용되어 있고 순례자나 떠돌이들도 많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그들을 따뜻하게 대해 치료해 양식과 물과 소금, 양념 따위를 나눠 줍니다.”(Benedict O’Grady/ 성염 옮김, 『사랑의 투사 천주의 성 요한』 (서울: 성바오로, 2008), 171-174).

우리가 믿음이 좋아진다는 것은 사랑이 점점 성숙해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유익만을 구하던 욕망의 사랑에서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성숙한 사랑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날마다 성숙한 사랑으로 발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6-7절을 읽겠습니다. 4절과 5절에 나타난 사랑이 개인적이며, 인격의 변화를 통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다면, 6-7절의 사랑은 공적이며, 영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데 까지 나갑니다. 이 세상의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며, 진리이신 예수님을 기뻐하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믿으며, 모든 것을 예수님께 바라는 것이 곧 영적인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4-5절의 개인적이며 성숙한 인격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사랑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고 사는 신앙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영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제가 우리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 교회에 참석하시는 우리 성도들 뿐만 아니라 교회에 참석하지 않는 다른 가족들을 위해서도 매일 기도를 합니다. 특히, 그 가족분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 예수님을 믿도록 빠뜨리지 않고 꼭 기도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영적으로 성도의 가정을 사랑하는 최고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부모나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자녀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전도하는 영적인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죄에 물든 인간은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는 욕망의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자기를 넘어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면 다른 사람이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욕망의 사랑에서 성숙한 인격의 사랑으로 발전하시고, 더 발전하여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해 내는 영적인 사랑을 베푸는 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에게
사랑을 충많 부어 주셔서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욕망의 사랑에서 벗어나
성숙한 인격적 사랑을 
하게 하시고
여기에 더 넘어서
사람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영적인 사랑을
베풀며 사는
분들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회수 : 62 , 추천 : 3 , 작성일 : 2022-05-15 , IP : 1.224.21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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